일상

기필코 바다를 보리라. - 백수해안도로

huuka 2021. 10. 20. 17:14

백수해안도로 -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원불교 영산성지~백수읍 백암리 석구미마을) 16.8km에 이르는 드라이브코스.
노을전시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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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필코 바다를 보아야했다.
파도 소리도 듣고 싶고, 갯내도 맡고 싶었다. 속절없이 바다가 그리워질 때면 젖떨어진 아기마냥 설웁고 안달이 난다.
부산에 간 남편이 아프다. 남편은 마음을 놓을수가 없다. 늘 그랬다. 나도 어딘가 기대고 싶고 이제는 조금 편해지고 싶은데 나에게는 기댈 곳도 쉼도 허락되지 않는가보다. 바다를 보아야겠다. 엄마품 같은 바다를 보아야겠다.
고속도로를 1시간 20분 달려 찾아간 곳은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도로로 손꼽히는 백수해안도로다. 바닷가라 할지라도 모래미해수욕장을 제외한 모든 도로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바위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속도를 늦추어 달린다. 곳곳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조금 걸어볼까하다 돌아오는 길이 버거울듯해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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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전시관이다.
코로나가 아니면 제법 붐빌 장소임에 틀림없다. 오늘은 파도가 높고 바람이 차다. 푸른 바다를 보고 자란 나로서는 서해안의 흙빛바다는 바다가 아니다. 그래 예상은 했다. 내가 보고 싶은 바다를 볼 수 없을거라는 것도. 그럼에도 파도소리만은 다르지 않다. 나를 반기는 파도소리. 한참을 등대에 앉아 귀를 기울인다. 파도소리가 만들어내는 고요가 좋다. 파도소리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 고요가 좋다. 어쩌면 나의 우울은 외로움이 아니다. 나는 나의 고독을 사랑한다. 나의 우울은 나의 고요와 평화를 보장받지 못함에서 오는 분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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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할 때 고통을 느낀다. 왜 그렇게 말을 할까. 또 왜 그렇게 말을 했을까? 미처 전하지 못했던 가슴말과 듣지 못하고 놓쳐버린 누군가의 가슴말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본다. 파도. 바람. 하늘. 내가 참 좋아하는 것들이 여기에 다 있구나.

잿빛 바다일지라도 모래사장을 밟았다. 얼마만인가.. 맨발로 걸어보고 싶지만 용기가 없다. 나는 이미 이런 섣부른 일을 할 용기를 잃어버린 나이인거다. 한참을 들여다본다. 밀려왔다. 다시금 저 만큼 멀어져가는 파도들을 볼 때 당신과 나 사이를 보는 듯해 웃음이 난다. 바다보다 더 기막힌 하늘을 선물받았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돌아가는 길에는 법성포다리 사진 한 장 찍고 가야겠다. 내 삶에 또 이곳에 올 일이 있을까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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