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도 은빛이 감도는 가문비나무. 그 아래에 서면 서늘함이 느껴졌다. 은푸른 빛은 벼린 칼날처럼 차갑고 날카롭다. 그것이 나는 좋다. 나무가 주는 한기(寒氣)가 마치 다른 나무들과는 어울리기를 포기한 혼자만의 고독처럼. 자기만의 시간과 자기만의 공간을 가진 나무의 이기가 마음에 든다. 세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그 의엿함이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첫 눈이 내린 날 서둘러 바우니 공원을 찾았다. 딱 한 그루. 바우니 공원에는 많은 낙엽수들이 이미 잎을 떨구고 맨가지를 드러낼 때조차 뾰족한 잎의 은푸른 빛을 잃지 않은 가문비나무가 있다. 첫 눈을 맞은 가문비나무는 신비로운 은빛이 더 깊어져 숲의 모든 색들을 반사하는 반사경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미 해는 정수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