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느리고 게으른, 거기에 변덕스럽기까지한 비가 하루종일 내린다. 몇날을 이어 아픈 나는 핫팩을 허리에 붙이고 하루를 보낸다. 지루한 비.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건만 마치 장맛비내리듯 그칠 줄을 모른다. 어디에서 속을 다쳤을까? 불편한 속에 곡기마저 떼우지 못하고. 쿠르릉 거리는 배가 변덕스런 하늘을 닮아있어 차라리 빈속이 편할 듯하다. . 나는 여전히 그자리에 서 있다. 마치 심장이 소진되어 사라질 소실점을 기다리듯 안으로만 응시한 체. 이미 소원해진 것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시간은 경주마처럼 달려가고 차창밖으로 사라지는 풍경처럼 그날은 까마득히 뒷걸음질이다. 작은 화분을 들여 초록잎을 보는 것과 가져 온 몇 권의 책을 곱씹듯 천천히 읽는 것이 마치 내 몸에 보약을 들이키듯 원기를 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