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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봄은 오고..

huuka 2024. 4. 7. 05:45

서울의 하늘이 이렇게 흐리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봄철 황사나 미세먼지 익숙한 것이었는데 어느새 뉴욕의 쨍한 하늘에 길들여졌나보다. 딸아이와 나선 서울숲은 때를 맞은 벚꽃이 한창이다.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봄은 우리의 곁에 왔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우리의 삶에 넘쳐난다. 나이를 먹는것도 아이가 자라는 것도 그리고 .... sns를 열어볼 시간없이 바쁘게 살아온 뉴욕에서의 삶과 달리 이곳에서 보낸 몇 일은 그간의 소식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추스렸던 마음에 균열이 간다. 조금은 단단해 졌다고 생각한 마음이 부서지기 쉬운 두부마냥 모서리가 뭉그러진다. 나의 기억이 그러하듯 우리 모두의 기억은 자기편리대로 변형되고 저장되어 새로운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거짓이나 잘못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저장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통증이 동반되는 것들에게는 조금의 각색이 필요하고, 살아내기 위한 생의 변명은 어쩔수 없지 않은까? 견뎌낸 수모와 고통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될지라도 어쩌면 그렇게 해서라도 그가 혹은 그녀가 살아냈다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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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서 이해득실에 따라 변화하는 많은 관계의 사람보다 마지막 순간에 생의 희망이 되어줄 단 한명의 친구가 더 중요하다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어떠한 실수와 잘못에도 행간을 읽어주고 희미한 진정성을 찾아내어줄 베이스가 되어주겠다는 소중한 친구의 말이 고맙기만 하다. 나는 실수하는 실수많은 인간이고, 선한 사람이 아니며 지혜롭지도 못하다. 그런 까닭에 의를 내세우고 시시비비를 따져 비난하는 사람들앞에 취약하다. 쉽게 도마에 오르내릴수 있는 조건을 가졌고, 나를 위해 변명해줄 명분조차 없다. 그렇게 내가 살아온 삶은 어떻게 하든 살아내려한 삶의 이력보다 조악한  이력을 가지게 된 것이고, 그런 사람으로 명명될수밖에 없는 백그라운드를 가지게 되었다. 어찌하랴. 그것이 내가 살아온 삶인데... 이런 나에게 손내밀어 줄 친구가 있다는 것은 신이 내게 내려준 축복중 하나가 아닐까. 나는 그런 이들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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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외로운 것이고, 어차피 혼자 살아내는 것이기에 애쓰지 않아도 다가오는 매일매일은 조금은 애쓰며 살아내어야 하지 않을까. 봄꽃은 피었는데 바람은 여전히 차갑고, 하늘은 희뿌옇게 알수 없는 내일과 같을지라도 내가 과거에 묶이지 않으면 오늘을 위한 새 걸음은 내 디딜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