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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진행

huuka 2024. 3. 11. 22:51

어제부터 썸머 타임이 적용되어 한시간이 빨라졌다. 국가정책으로부터 합법적으로 한시간을 도둑맞은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모든 전자시계들은 한시간을 뛰어넘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서 한 시간이 그냥 사라져버린 것조차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한 사람 그 변화에 거스르지도 않는다. 반복이 가져다놓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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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월말부터 일정이 2시간 늦추어졌지만 루틴을 깨기 싫어 동일한 시간에 나와 커피한 잔을 마시며 인강을 듣고 있다. 딸애는 미국살면서 무슨 한국영어 인강을 듣냐며 웃었지만 그러게 말이다. 이곳에서의 삶은 살아보지 않은 이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태평양을 가로질러 외국이라고 왔지만 생활권은 집성촌안에서 한국어만 사용한다. 영어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오히려 스페인어를 더 많이 듣는다고 해야할까...그러다 온통 영어로 진행되는 도서관 영어수업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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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듣던 M인터넷 강좌하나를 선택해 한시간 수업을 듣고 글을 쓰는 나만의 시간을 선택한지 20여일. 분명 반복된 시간은 작은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여전히 영어의 성장은 확인할 수 없지만 써진 글은 남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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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들과 한국에서의 일정을 정리하면서 이번에 나갔다 돌아오면, 다시 나가기까지 2-3년정도의 시간은 걸릴듯하고 그동안 다음 행보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될 듯한데 조급한 마음에 비해 뚜렷한 목표는 설정하기가 어려운것이 현실이다. 적지 않은 나이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발목잡히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영어 하나 완벽히 해도 먹고 살수 있는 것은 30-40대 일이다. 자격증 하나라도 마련해 나가려면 최소한 3년은 더 걸릴 것인데 과연 그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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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여러번 절망하고 좌절하지만 과거의 나와는 확연히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해도 안되는 것이 있고, 노력해도 잘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며, 최고가 아니라도 괜찮다는 것" 그것을 수용하는 나를 본다. 과거의 나라면 모든 것이 화살이 되어 나 스스로를 찔렀다. 그런 나자신을 용납할 수 없고, 초라해지는 자신이 싫어서 최후까지 바라보는 자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도 나라는 것을 알아가고 그 자신을 보듬어주고 포기하지 않으려 다독인다. 하지만 여전히 스트레스 아래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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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은 때로는 슬프고 절망하게 하지만 그 반복을 통해 스스로 깨닫지 못할지라도 분명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매일이 신이 주는 선물이라면 그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