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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여우비가 내리는 날.

huuka 2024. 2. 27. 23:42

어제는 미친듯이 날씨가 좋더니 오늘은 안개로 자욱하다. 시야가 온통 뿌연것이 마친 흰 눈이 나린듯하다. 입춘이 지나더니 자연의 변죽이 물끓듯 끓어되고 서둘러 움을 틔운 나뭇가지는 새삼스런 추위에 몸을 떤다. 어디 그 나무뿐이랴. 변덕심한 날씨에 입고나간 옷이 때로는 부끄러워지기도하고 때론 근육이 뭉칠만큼 웅크리게 된다. 봄이 오고 있다. 늘 그렇듯 계절의 변화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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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아침 친구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타국에서 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부의를 전했지만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어떠할지 잘 알기에 나의 마음까지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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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비행기삯이 없었다는 말은 핑게에 지나지 않았고, 아버지의 죽음을 장례의 모든 일정이 마치고 한국에 남은 법적인 절차(사망신고)를 할 때에야 이복오빠를 통해 듣게 되었다. 그 허망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지만 한국땅에서 내가 유일하게 육신의 끈을 이어 살아갈 수 있었던 까닭이 그분이었고, 내 생명의 원천이 그분에게로 나왔기에 쏟구치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먼 이역땅에 모셔진 아버지의 빈소를 내가 살아서 찾아뵐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이 미국에 와서도 아버지의 빈소를 찾지 못했다. 왜일까? 아무리 어머니가 다르다 할지라도 한피받아 난 한 형제이건만 이복오빠에게 내가 미국에 왔고, 그것도 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오빠의 잘못으로 온 가정이 부도를 맞았지만 그는 도미후 안정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었고, 남겨진 가족들의 삶은 지극히도 궁상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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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미국에 와서 살게 된 나는 아버지의 묘소를 찾을 수 있을까? 산다는 것이 갈수록 오리무중이 되어서 오늘 이 하루가 내일의 어떤 의미가 될 지 알수 없다. 나는 그이에게  "그래도 당신에게는 형제자매가 있잖아."라고 말할때마다  그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남보다 못한 형제라고 그는 말했지만 철저히 외면당하고 혼자 살아낼 수밖에 없는 사고무친의 삶을 어찌 이해할수 있을까. 가진 자는 가진 것이 없는 자의 마음을 알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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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에 한국을 다녀온 뒤 아버지의 묘소를 다녀오자. 아버지의 생신이 그 무렵일터이니 날도 적당할 듯하다. 아버지는 이런 나를 어떻게 맞아주실까. 차가운 땅아래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며 살아가는 막내에게 뭐라 말씀하실까. 이렇게 희뿌연 날이면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그럼에도 아버지와의 추억이 따뜻하게 기억되는 까닭이겠지.
"아빠. 나는 아직도 아빠가 그립네. 아빠의 웃음과 잔소리가 오늘 참 많이 그립다. 6월에는 아빠보러갈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