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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를 쓰다."

huuka 2023. 11. 24. 07:08

오래 앓은 사람이 가만히 누워있어도 아프다라는 말을 잘 알지 못했다. 서 있자니 어지럽고 앉아있으려니 엉덩이뼈가 아프다. 연속되는 기침을 할 때마다 목 안을 칼로 그은 듯 찢어질 듯 화끈거린다. 급기야 흉통에서부터 등줄기까지 안 아픈 곳없이 아프다. 그렇게 간 응급진료원. 독감과 코비드 검사를 했지만 둘다 음성. 정밀검사에 넘기고 감기약을 처방받아 왔다. 하루가 지난 어제. 때아닌 코비드 진단을 받았다. ' 아 그동안 맞았던 백신들은 다 무엇이었단 말인가?' 5일간 먹어야 할 약과 게로레이, 물, 죽한그릇을 샀다. thanksgiving camp를 간 아들에게 고맙다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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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없는 글을 읽어가다가도 울컥할 때가 있는데 어느 한 부분 절묘하니 자신의 상황과 맞아떨어지거나 마음의 간절한 그 무엇인가를 건드렸을 때가 아닌가 싶다. 기도요청을 위해 페북에 글을 올렸다. 지금껏 나의 담벼락을 찾는 이들이라면 틀림없이 나를 진정으로 염려하고 기도해주실 분들이기에 의지하는 마음으로 짧은 글을 올렸다. 작년 이맘때 같았다면 나는 글을 남기지 않았겠지. 궁금과 염려는 다르고 가쉽거리와 기도제목은 다른 거니까... 몇 개의 댓글과 몇 분의 카톡...한 목사님의 댓글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아플 때는 떼를 써야는데..."동공 안쪽에서부터 차오른 뜨거운 그 무엇은 짐승소리로 변해버린 목청을 뚫고 나왔다. 울음과 기침이 들개의 짖음같은 공명을 이룰 때어야 겨우 눈물이 그쳤다. 그리고는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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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한 구석에서라도 떼를 써본 적이 있었나? 아프다고 떼 써본적이 있었던가. 설움과 감정에 치우친 눈물도 말끔히 게워내고 나면 오히려 이성적인 자아를 보게 만드는 정화의 힘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아프다고 제대로 떼를 써보지를 못했다. 그는 이미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했던 이었기에 나의 아픔은 그저 죽지 않을 병이었다. 그런 내가 떼를 쓰는 것은 부당한 것이었고 그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평생 의지가 없었던 나는 그의 무심조차 기꺼웠다. 단순히 쉬어라는 그 말이 고마웠고, 그의 등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의 나를 보니 그건 결코 충분한 게 아니였다. 내 삶이 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는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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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을 기록하게 될 때 나는 어떤 얼굴로 그 글들을 적어가고 있게 될까? 어쩌면 나는 나의 남은 사랑에 떼를 써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것이 분명 사랑이었다고 그렇게 말이다. 몸이 무너져가고 마음마져 무너져가도 뚜렷이 각인되는 이름과 얼굴에 나는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웃으며 보내주어야 한다는 걸 왜 아직 못 배우는 것일까. 정신이 혼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