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회퍼의 '선데이' / 디트리히 본 회퍼 / 조병준 옮김 / 샘솟는 기쁨
테겔 감옥에서 쓴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선데이” 200여 페이지의 두껍지 않은 소설임에도 결코 가볍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다. 추천의 글에서는 본 회퍼가 걸어간 선(善)의 길의 출발점이 어느 곳인지 그가 맺었던 의(義)의 열매의 씨앗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고 적혀 있지만 지식이 짧은 나로서는 그것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소설이라는 문학적 장치에 의해 본 회퍼에 조금은 다가간 느낌이라고 할까?
소설의 도입은 캐롤라인 브레이크여사와 손자와의 대화로 문을 열어간다. 이 소설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 도입부의 대화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의 가치는 충분하다 여길 만큼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했다.
<캐롤라인 브레이크 여사>
“얘야 중요한 것은 설교가 새로운 말씀인가가 아니라 올바른 말씀인가 하는 거란다. 우리는 올바른 것에 대해 반복해서 들을 필요가 있단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계속해서 잊어버리거든.”
“그래 머리로 기억하고 입술로 줄줄 암송하겠지 그러나 마음과 손이 배우는 속도는 그보다 느리단다.”p17
<손자>
“어쨌든 그렇게 감성적으로 잘못 전하고 있는 설교는 살아남을 힘이 없어요. 저는 생생하게 살아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있지, 죽은 신앙이나 과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p19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세대. 바른 말씀을 지키려는 구 세대와 그 말씀이 고루하게 느껴지는 새로운 세대의 감각. 너무나 익숙한 모습 아닌가?
또한 진리가 사라진 세대를 향해 그녀는 중요한 것이 위기에 처했다고 가르쳐주었다.
“성도들, 마을 사람들, 가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박탈당했고 조만간 그들의 삶이 중심을 잃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했다.”p21
더불어 다음세대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빼내감으로 그들에게 이르는 하나님의 심판인것인가를 (p22) 자문하는 그녀. 이것은 1930년대 독일교회에 흘러넘쳤던 형식주의 경향, 즉 교인들이 예배에 참석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신다는 말씀만 듣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신앙 풍조, 이른바 ‘값싼 은혜’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시각이 묻어난다. 나는 1930년대 독일교회의 모습을 본 회퍼의 글을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교회의 교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야기는 독일 중산층 두 가족의 일상과 사건 사고를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한 신학적인 주제, 시대적 담론으로 이끌어 간다. 사회적 신분 상승을 바라는 현대병과 기독교적 믿음사이의 갈등. 무의식적 기독교정신, 폭력과 권력의 남용, 노예와 자유문제등. 얼마나 많은 고민거리들을 던져주는가! 그것들을 다 담아낼 수 없어. 마음에 와 닿은 글을 붙임으로 갈무리해본다.
“ 우리 모두에게 힘을 남용하고 추진하려는 어둡고 위험한 의지가 있단다. 우리가 원래 가진 것이며 그에 따라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게 되지. 우리가 이런 악한 본능을 만나는 곳마다 먼저 우리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증오와 열정의 힘을 가지고 저항해야만 한다. .... 그 힘은 무언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룩함이 있고 또 쉽게 악마로 또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크고 작은 존재들로 바뀌는 것이란다.p98”
“서로에게 대화가 주고받는 선물이 될 때 폭력이나 무관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은 것은 미처 발견되지 않은 보물처럼 상대방에게 몸짓으로 알린다.”p118
“진리에 대해 강하고 엄격한 자만이 삶에 있어서 온유하고 종종 겪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미소 지을 수 있단다.”p124
“역사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면 타협이 아니라 실제 있는 그대로의 삶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것이다.”p181
'영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낮은 자의 예수님을 만나는 중근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0) | 2019.06.02 |
---|---|
우치무라 간조 " 구안록" (0) | 2019.01.18 |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 (0) | 2019.01.05 |
소외된 이들의 하나님 - 룻기 (0) | 2018.11.17 |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 / 로완 윌리엄스 / 비아 (0) | 2018.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