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30

기차는 다니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는 오지 않습니다." 내 눈은 오지 않는 기차를 찾고 내 마음은 닿지 않는 당신을 기다린다. 한바탕 비라도 쏟아져 내리면 좋으련만 습기로 무거워진 공기만이 어깨를 누른다. 이제는 그만 보내줘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아무리 철길을 가꾸고 꾸며도 기차는 오지 않듯 내마음 접지 않는다고 마주할 이도 아니건만 뭐가 이렇게 힘겨운 것일까. 마음의 시름과는 상관없이 이다지도 꽃은 예쁘게 피었다. 차례차례 피어나는 저 꽃들처럼 내 인생도 피어날 순간이 있을까. 아니 이미 피었다. 져버린 것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해마다 꽃은 피고 진다. 내 인생의 한때가 피었다 져버린 것이라면 또 피어날 한해를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꽃이 피지 않아도 꽃봉우리 몫을 하는 초록무성한 잎이 있다. 굳이 져버린 꽃..

일상 2022.06.29

아가. 비마중가자.

곧 쏟아 부을것같지만 이녀석 막둥이를 닮았는지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것이 영 오늘은 퍼부을것 같지 않다. 이런 날. 마치 비는 올듯한데 비가 오지 않아 온몸에 찌뿌둥하고 땀이 송글송글 맺히지만 마음자리에는 폭우가 쏟아질것만 같은. 그럴 때는 무엇으로도 마음을 잡을 수 없다. 망설이는 갈등의 한순간. 떠오르는 시구절이있고, 시인은 어서 빨리 차비를 하고 차한잔하게 오라 한다. . 그러게 말이다. 땅끝마을. 해남하고도 송지면 달마산 아래 미황사 이미 동백나무아래 흙으로 자신의 모습을 모두 감춘 시인 김태정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래 이 땅에 언제까지 있을까보냐. 얼릉 채비를 하고 걸음을 나선다. 미황사의 현판은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거룩이나 엄숙함과는 멀다. 5살짜리 막배운 아이의 글씨마냥 게발세발 적은 글씨를..

일상 2022.06.28

초여름의 꿈 - 라벤더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 아프다.라는 말이 있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보라색은 아무나 가까이 할 수 없는 색이었는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비단이란 뜻의 보라(甫羅). 고귀함과 권력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합니다. 보라색은 가시성이 나빠 인지가 어렵기에 몽환적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오늘은 보라의 바다에 가 마음껏 유영하고 왔습니다. 보라의 세상에 들어서면 "붕붕"거리는 벌소리에 이미 청각은 진공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마치 체면에 걸린듯 휘청거리게 되지요. 정해진 길만을 따라 보랏길을 걸어가라 적혀있지만 그 길이 정확히 보이지 않습니다. 신비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모든것이 명확하다면 신비라는 이름은 걸맞지 않는 것일터이니까요. 평일이라 사람이 드문 것이었겠지만 곧 시작될 라벤더축제기간에는 정말 많..

일상 2022.06.21

곱씹기

본격적인 짐정리를 시작하면서 마음이 널뛰기 시작한다.책마다 남겨진 흔적들이 공간과 시간을 차지하고 움직이는 손은 테이프늘어지든 늘어진다. 일이 하기 싫어서가 아닌 이런 삶이 싫어져서 자꾸만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사랑도.사는것도 다 피곤해져서 오직 쉬고 싶은 마음뿐.이 땅 어디서 쉴 수 있겠나 생각하니 다시 떠오르는건 또 어두운 죽음뿐이다. 내일이 없어지면 좋겠다.간.절.히.

일상 2022.06.19

보고싶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보고 싶다고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물마다 다 자기의 때가 있고 그때를 보지 못한다면 그 한 해는 볼 수가 없다. 내 마음은 보길 원했고, 내 때가 얼마 남지 않아 꼭 보고자 했지만 원하는 건 나의 마음일 뿐 그것은 자기의 때에 자기의 몫을 다할 뿐이다. 백련이 보고 싶었다. 이맘때면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아직 몽우리조차 올라오지 않았고 몽우리를 받치기 위한 연잎만 풍성하니 연밭을 메우고 있었다. 혹여나 볼 수 있을까 해서 저 넓은 연밭은 크게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만물은 다 때가 있는 법. 그 얼굴을 보기에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로 하나보다. 한 달 뒤면 난 이미 없는데 말이다. 올해의 연은 보지 못할 듯하다. 하지만 ..

일상 2022.06.16

고양이는 없었어요.

모처럼 쨍한 하늘을 볼 수 있었어. 내가 좋아하는 바람도 불었으니까 어쩜 오늘처럼 좋은 날은 드물지도 모르겠다. 우연처럼 지나갔던 간이역인 몽탄역. 자그마한 역이었지만 기차박물관이 있었고, 몽탄역을 지키던 고양이가 있었다. 그 생각에 고양이 사료와 간식을 챙겨서 갔지만 그때 그 고양이는, 아니 그 고양이가 아닐지라도 고양이는 없었다. 몽탄은 꿈 몽자에 여울 탄자를 적어 꿈속에서 계시를 받아 건넌 여울이란 뜻으로 고려를 세운 왕건의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라 하니 가히 그 역사는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왠지 신비감이 넘치는 몽탄이 그렇게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몽탄역을 지나는 기찻소리가 들리는 식영정까지 들어가 보았다. 수령 500년을 훌쩍 뛰어넘은 보호수들로 둘러쌓인 식영정은 모..

일상 2022.06.15

여름의 문턱.

짧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령(嶺)에는 나무가지를 흔드는 비와 바람이 있다. 몇 번의 비와 몇 번의 바람의 문턱을 지나면 자신의 몸보다 큰 얼굴을 가진 수국이 핀다. 수국(水菊)은 초 여름에서 무더운 여름 중순까지 피는 꽃이다. 꽃말은 수국의 색만큼이나 다양하다. 냉정, 냉담과 무정,변덕, 변심인데 초여름의 변덕스런 기후변화를 반영한 꽃말인듯하다. 또,다르게 진실한 사랑, 처녀의 꿈, 진심,인내심이 강한 사랑이라는 꽃말도 존재한다. 왠지 후자의 꽃말에 마음이 가는 건 이 더위속에 시원스레 꽃대를 올리고 작디작은 꽃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부케로 보이는 것이 인내심이 강한 사랑이라는 꽃말이 훨씬 어울릴듯하다. 꽃의 색으로 토양의 pH를 확인할 수 있는데, 정상토양에선 핑크색, 산성토에선 푸른색을 띈다고 한..

일상 2022.06.14

뒤란에 핀 접시꽃.

해남하고도 송지면 달마산 아래 늙고 허거워져 편안한 윤씨댁 뒤란은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오늘밤이 오늘밤 같지 않고 어제가 어제 같지 않고 내일이 내일 같지 않고 다만 개밥바라기 별이 뜨고 간장 된장이 익어가고 누렁이 밥 먹는 소리 천지에 꽉 들어차고 달마의 뒤란 / 김태정의 시중에서. 해남도 아니고 달마산 아래도 아니건만 난 초의선사생가의 뒤란을 볼때마다 김태정의 시가 떠오른다. 오늘도 뒤란에는 어김없이 엎어진 장독사이로 바람이 일고 촌스럽다 여겼던 접시꽃이 그렇게 이쁘게 자태를 뽑내고 있었다. 나랏꽃 무궁화와도 닮아 없던 애국심마저 불러 일으키고 기왓장과 장독.한옥의 처마가 이끄는 시선에 오늘밤이 오늘밤 같지 않고 어제가 어제 같지 않고 내일이 내일 같지 않은 꽃, 새들의 지저귐과 바람만이 천..

일상 2022.06.11

마음의 지도

마음의 지도는 정확했다. 찾아야 할 곳을 이정표가 아니라 마음으로 더듬어가니 그곳을 찾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멀게 느껴진건 그날 운전대를 잡은게 내가 아닌 까닭이었으리라. 코로나로 움츠렸던 모든것이 서서히 풀어지니 여기저기 공사가 한참이다. 1004개의 섬을 가진 관광특구인 신안은 개발의 박차를 가한듯 하다. 곧이어 수국축제까지 있다고 하니 그 손들이 얼마나 바빠질까? 나와는 상관없는 일.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길을 새기듯 시간을 들여 바라보고 렌즈에 담았다. 염전은 반사경. 그모습그대로 굴절되지 않고 담아낸다. 산을 담고 전신주를 담고 하늘의 구름을 담고 있다. 어쩌면 그때 그 시간, 그날 불던 바람조차 담고 있는것은 아닐까?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 순간 습한 바람이 뺨에 부딪힌다. 엘도라도리조트뒷편..

일상 2022.06.09

꿈에.

어젯밤 꿈에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단지 목소리 뿐이었건만 그의 얼굴과 표정 눈빛, 그 특유의 버릇까지 느낄 수 있어서 사람들이 꿈에 그 사람을 보았다는 것이 얼굴이나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목소리만 들어도 그렇게 보았다 말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가끔 우린 현실에서도 꿈같은 상황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받을 거라 상상하지 못한 전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가 들리게 되면 잠시 당황한다. 지금이 꿈은 아닌가... 뭐 그런 상황들 말이지... . 그랬다. 꿈에서 나는 전화를 걸었고, 받을거라 생각지 않았는데 전화기 넘어 그의 목소리가 들였다. 꿈이란 게 전지전능한 그 무엇이 있어서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쩔쩔 매고 있었고, 그는 친절하게 자신의 아이디를 말했다. 그리고는 나의 ..

일상 2022.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