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보고싶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huuka 2022. 6. 16. 20:26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보고 싶다고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물마다 다 자기의 때가 있고 그때를 보지 못한다면 그 한 해는 볼 수가 없다. 내 마음은 보길 원했고, 내 때가 얼마 남지 않아 꼭 보고자 했지만 원하는 건 나의 마음일 뿐 그것은 자기의 때에 자기의 몫을 다할 뿐이다.

백련이 보고 싶었다. 이맘때면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아직 몽우리조차 올라오지 않았고 몽우리를 받치기 위한 연잎만 풍성하니 연밭을 메우고 있었다. 혹여나 볼 수 있을까 해서 저 넓은 연밭은 크게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만물은 다 때가 있는 법. 그 얼굴을 보기에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로 하나보다. 한 달 뒤면 난 이미 없는데 말이다. 올해의 연은 보지 못할 듯하다. 하지만 자연의 넉넉함은 여기에 있다. 굳이 연이 아니라도 나에게 위로를 건네며 고운 얼굴을 디밀어 내민다.

뭐가 다른지 잘 모르지만 백연의 모습은 볼 수 없으니 한 곳 소담스레 수련이 피었다. 한 눈에도 알 수 있듯 백련과는 다르다. 수련은 키가 작고 수련잎은 두껍고 연잎에 비해 작다. 백련은 스스로의 자태를 뽐내듯 긴 줄기를 가지고 하늘을 향해 얼굴을 뻗는다. 이 세상 자기만큼 우아하고 고운 것은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수련은 몸매는 연에 비할바 되지 못하지만 그 색깔만은 화사함으로 보는 이를 만족시킨다. 어디 수련뿐이던가?

저마다의 모습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자연의 경이는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다. 이 땅에서의 나의 계절은 잰 걸음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나의 사정을 알길 없는 그네들은 전능자의 때에 순복함으로 자신의 시간에 맞추어 몸을 부풀려 간다. 갑자기 설움이 몰려든다. 내가 볼 수 없는 2022년의 백련. 또 언제나 볼 수 있으려나. 보고 싶다고 언제나 볼 수 없는 것이 자연이다. 순리. 순리라는 것. 인의로 바꿀 수 없는 자연의 시간. 그것이 바로 순리다. 삶은 순리대로 풀어가야 하는 것이고 인연도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가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 그것을 알고 지키는 것이 순리를 따른 삶이다. 하지만 말이다. 언제 어느 곳이나 때를 모르고 덤비는 순수가 있다. 그런 순진함이 그런 완벽하지 않음이 긍휼이고 은혜다. 한 바퀴 반을 돌 무렵 나만큼이나 성질 급한 녀석이 얼굴을 보인다. 이것은 하늘의 선물이다.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백련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한참을 본다. 서둘러 피어 제때에 피는 것들보다 얼굴도 키도 작다. 그래도 너 나를 위해 이렇게 시간을 잊어버린 것이구나. 참 고맙다.

초점을 맞추고 모습을 남긴 다음 주저앉아 울었다. 아무도 없는 넓은 연밭이 고맙다. 그래 너조차도 얼굴을 보여주는데 나의 간절함을 너는 알아주는데 그 목소리가 뭐라고 한 번 듣기가 이렇게 어려울까. 모든 것을 정하고 나니 마음에 밀려드는 슬픔과 아픔은 이루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떠나야 하는 발걸음은 천근이고 만근이다. 하지만 무심히 시간은 흐를 것이고 난 그 시간 속에서 또 나아갈 길을 찾고 부유하게 되겠지.

정답게 부리를 부비며 짹짹거리는 참새를 보니 언제나 그 시간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연을 보지 못했다. 두 번째 왔을 때 밭을 가득 메운 연을 보고 셔트를 누르기 바빴다. 세 번째인 오늘 난 그때의 시간을 다시금 찍는다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볼 수 있을 때 아껴보고 그 소중함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의 나를 기억하자. 이 땅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곳은 전남 무안 회산백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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