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쨍한 하늘을 볼 수 있었어. 내가 좋아하는 바람도 불었으니까 어쩜 오늘처럼 좋은 날은 드물지도 모르겠다.
우연처럼 지나갔던 간이역인 몽탄역. 자그마한 역이었지만 기차박물관이 있었고, 몽탄역을 지키던 고양이가 있었다. 그 생각에 고양이 사료와 간식을 챙겨서 갔지만 그때 그 고양이는, 아니 그 고양이가 아닐지라도 고양이는 없었다.
몽탄은 꿈 몽자에 여울 탄자를 적어 꿈속에서 계시를 받아 건넌 여울이란 뜻으로 고려를 세운 왕건의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라 하니 가히 그 역사는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왠지 신비감이 넘치는 몽탄이 그렇게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몽탄역을 지나는 기찻소리가 들리는 식영정까지 들어가 보았다.
수령 500년을 훌쩍 뛰어넘은 보호수들로 둘러쌓인 식영정은 모든 근심과 시름이 녹아나는 곳이었다. 무엇이 더 필요할 까? 초록이 무성한 500년의 역사와 그 시간을 넘나드는 바람.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들려오는 새소리. 사람의 그림자는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을 하지 않고 오직 자연만 돋워져 드러나는 곳. 그곳이 바로 식영정이었다.
식영정은 한호(閑好) 임연(1589∼1648)선생이 1630년에 무안에 입향 이후 강학소요처로 지은 정자로 영산강과 그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은 곳이다. 식영정 대청마루에 몸을 누이고 눈을 감으면 수많은 묵객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막자라나 수술을 드러내는 옥수수 부딪히는 소리가 메트로놈처럼 한치의 엇박을 허락하지 않고 조화를 이뤄낸다.
식영정 앞 산책로에는 때 이른 코스모스가 강아지풀이랑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있다. 모든 것의 자유를 표현하는 것이 춤이라 했던가? 몸을 움직여 감정과 생각을 드러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용기. 자기 풀어줌이 필요한 것인데 자연 만물은 어디에도 묶이지 않은 듯 그들의 춤사위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도 충분히 조화롭다. 나도 팔을 올려 겨드랑이 사이로 바람을 가득 넣어본다. 움직여지지 않는 몸. 마음이 무거운 까닭이다. 무슨 고민. 무슨 염려가 그리 많아 이렇게 몸이 무거운 것일까? 풀꽃의 가벼움을 배워야 한다. 500년 수령을 자랑하는 보호수. 그 오랜 시간 속에도 에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들의 나뭇가지는 묵직하지만 어디에도 묶이지 않은 자유로운 흔들림이 있다. 아니 오히려 가지와 뿌리의 든든함이주는 안정감에 무게보다 가벼운 느낌을 주는지 모른다.
자연에 기대길 잘한것 같다. 마음이 기운을 차리고 조금은 단단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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