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뒤란에 핀 접시꽃.

huuka 2022. 6. 11. 19:05

해남하고도 송지면 달마산 아래
늙고 허거워져 편안한 윤씨댁 뒤란은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오늘밤이 오늘밤 같지 않고
어제가 어제 같지 않고
내일이 내일 같지 않고 다만

개밥바라기 별이 뜨고
간장 된장이 익어가고
누렁이 밥 먹는 소리
천지에 꽉 들어차고

달마의 뒤란 / 김태정의 시중에서.

해남도 아니고 달마산 아래도 아니건만 난 초의선사생가의 뒤란을 볼때마다 김태정의 시가 떠오른다. 오늘도 뒤란에는 어김없이 엎어진 장독사이로 바람이 일고  촌스럽다 여겼던 접시꽃이 그렇게 이쁘게 자태를 뽑내고 있었다. 나랏꽃 무궁화와도 닮아 없던 애국심마저 불러 일으키고 기왓장과 장독.한옥의 처마가 이끄는 시선에 오늘밤이 오늘밤 같지 않고 어제가 어제 같지 않고 내일이 내일 같지 않은 꽃, 새들의 지저귐과 바람만이 천지에 꽉차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나무 대청마루를 둔 일지암에 올라 몸을 뉘였다. 소쩍새소리.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의 지저귐으로 새의 크기를 가늠해본다. 소쩍소쩍 간격을 두고 우는 그 여백을 채우는 몸작은 새들은 빠른 울음. 자칫 어울리지 않을듯한 시간을 잊은 닭울음조차도 모든것이 이야기가 되어 어색함은 찾아 볼 길 없는 곳. 
청푸른 대나무를 앞에 펼쳐두고 꺾인 대나무로 침상을 만들어 누워 있으니 청푸른 대나무에서 가볍고 푸른 바람이 발 바닥을 간지럽혀오고, 땅으로부터 습기 가득한 빗방울을 부르는 땅의 울림이 들려온다. 일어나라고 빗방울 들기전에 돌아가라고 땅의 어머니는 나직히 속삭인다.

너는 누구기에 이렇게 앙징맞게 생겼다냐. 장난꾸러기가 나뭇잎을 가지에 걸쳐 꼬리를 꼬아 묶어둔것 처럼 귀엽다. 하지만 그의 귀여움을 얕잡아 봐서는 곤란하다. 가지의 가시를 보아라. 가시까지 드러낸 몸으로 어떤 모습으로 자라게 될지 내일이 기대되는, 그래 너를 보는 것으로 내일을 기대하고 살 소망을 얻어가자. 선사에 오르는 길 보리밭에는 무르익어가는 보리가 추숫꾼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조금의 태양빛과 한줄기 비를 기다리는 갈망이 느껴지던 보리밭. 나도 삶의 갈망을 얻고 싶어진다. 이 장소가 나에게는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평생 잊지 못할 최애의 장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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