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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곳.

묻어두면 끝일거라 생각하고 마음한구석 묻어뒀더니 자꾸만 이야기를 걸어온다. 나는 이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데 마음은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다. "그날 있잖아~" 하루종일 방바닥을 뒹굴며 내가 좋아하는 김소연의 책을 읽다가 "어금니를 깨물 수 밖에 없는 애정"을 자각하고 미친듯이 한참을 울었다. 어금니를 깨물었던 애정의 시간들. 좀더 힘낼 수 있었다면 괜찮았을까? 그것이 나만의 문제였다면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일까? 어제는 나의 눈물을 예견한듯 비가 내렸다. . 모자를 쓰고 산책에 나섰다. 길모퉁이를 돌때마다 눈이 시리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은 내가 흘리는 눈물이 보이지 않는지 다큰 어른이 울먹이며 걷는 것이 꺼름직한 것인지 모른척 한다. 오히려 그것이 고맙다. 오늘은 울어야 하는 날이고 나는 울어야만..

일상 2022.06.06

이별은 차마 못했네. - 박노해

이별은 차마 못했네. . 사랑은 했는데 이별은 못했네 사랑은 할 줄은 알았는데 이별할 줄은 몰랐었네 내 사랑 잘 가라고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차마 이별은 못했네 이별도 못한 내 사랑 지금 어디를 떠돌고 있는지 길을 잃고 우는 미아 별처럼 어느 허공에 깜박이고 있는지 사랑은 했는데 이별은 못했네 사랑도 다 못했는데 이별은 차마 못하겠네 잊다가도 웃다가도 홀로 조용한 시간이면 스치듯 가슴을 베고 살아오는 가여운 내 사랑 시린 별로 내 안에 떠도는 이별 없는 내 사랑 안녕 없는 내 사랑

예술/시 2022.05.28

너의 법칙.

때로는 물이 차오르듯 슬픔이 차오를 때가 있지. 그러다 목언저리 터억 걸쳐앉아 내려가지도 넘치지도 않아 목에 가시가 베인 듯 슬픔이 걸려 있어. 계절을 잊은 꽃만큼 슬픈게 있을까. 계절을 잊은 것인지 온기를 잃어버린것인지 미치듯. 흐드러져. 높아지는 정오의 열기에 말라가는 자신을 보는구나. 뿌리끝. 온 몸으로 물기를 빨아올려도 그만이야. 슬픈 인생아. 때를 잘못 만났구나. 나는 죽고 너는 살고. 죽어야 의미가 되는 너의 법칙.

일상 2022.05.26

긴급 SOS

휴대폰 기능에 긴급 SOS가 있다. 위급한 상황시 버튼을 누르면 장소가 공유되어 구조를 신청할 수 있는 장치다. 근데 이 기능이 영 마뜩찮은게 뜻하지 않게 버튼을 울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오늘 병원을 다녀오는 길 고속버스에서 급하게 내리며 휴대폰을 가방에 던져넣었다. 천 가방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자 급기야 휴대폰측면버튼이 그것도 공교롭게도 3번 눌러지고 비상연락으로 저장된 분들께 긴급요청이 들어갔다. 아이들이 전화를 하고 난리가 났지만 무음이었던 나는 택시를 타고서야 후레쉬가 켜져있어 알게 되었다.아이들의 원성. "놀랐잖아."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구조신청이 갔음에도 오지 않는 연락에 서운한 마음이 깊어간다. 수확되지 못한 대파가 내 키만큼 자랐다. 버려졌다기 보다 가치를 잃어버림. 무가치함.방치..

일상 2022.05.26

마지막 한 장은 그냥 남겨 둘게요.

마지막 한 장을 접기가 가장 어려운 듯하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내 마음과 어긋나 버릴 때마다 마음을 접어 더 이상 접을 것이 없을만큼 접었다. 하지만 왠걸. 이번이 끝이다 생각할 때마다 아직도 접을 모서리가 남아 있어 그렇게 그렇게 접어갔다. 이제는 그 마지막 더이상 남지않은 모서리를 보면서 이 모서리를 다 접으면 둥글어 질 줄 알았던 것이 둥글어지기는 커녕 조그맣게 아주 조그만하게 변해서 사라져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 마지막 그 마지막을 접으면 물거품처럼 사람질 듯해 그냥 남겨두기로 했다. 그리고 마음깊이 봉인했다. 아리다. 이것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언젠가 많은 시간이 흘러 봉인이 해제될 날 이 오기나 할까? 그것은 헛된 마음이란 걸 알지만 마지막 한장은 그냥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일상 2022.05.18

뒷모습조차 찬란한.

늘 얼굴을 찍으려고 했다. 꽃 수술이 담뿍 드러나 꽃잎과 대조를 이루는 색채감이 드러나도록 말이다. 오늘은 왠지 꽃의 뒷모습을 보았다. 정오의 햇살을 받아 투명하기까지 한 꽃의 뒷모습. 제대로 찬란하다. 그랬다. 꽃은 뒷모습까지도 찬란하다. 그래서 꽃인지도 모른다. . 뒷모습이 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쳐진 어깨로 터벅터벅 걸어가 바라보는 이마저 기운을 앗아가는 그런 뒷모습이 아니라 상큼한 향기를 남기고 왠지모를 기운과 기상이 느껴져 함께 어깨를 맞춰 걸어가고 싶어지게 하는 그런 뒷모습. 안녕을 고하는 자리역시 마찬가지다.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가능한 흔적을 지워 새로운 이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그런 마무리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사람일이란게 마음대로 되는 것만은 아닌가보다. . 미치도록 미련을 ..

일상 2022.05.17

그때 우리가 좀 더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때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을까? 그때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 비참과 절망을 나눠질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나도 한계였다고 변명하는건 서로에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때문이겠지. . 때로는 나는 껍질밖에 남지 않은 나를 본다. 나의 허상. 나의 허세. 나의 빈 껍질. 그래서 나는 나를 조문하고 때때로 나의 죽음을 맞이한다. . 언젠가 아카시아꽃을 따다 튀김을 해 먹은 적이 있었다. 입안 가득 튀김옷의 고소함보다 꽃의 향긋함이 남았던 기억. 삶과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가운데 있고 기억은 덧입혀진 것보다 본연의 것만 남는것 같다. 아카시아의 향긋함만 남았듯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그래서 살아서 조문하는 나는 죽음이 ..

일상 2022.05.11

저무는 해의 눈부심

저녁 약을 먹으면 처음에는 깨지 않고 5시간을 잣다. 마음을 끓인 탓인지 요몇일 그 5시간조차 채우지 못하고 서너차례 깨기도 하고 한시간이 줄어 4시간밖에 저녁 잠을 자지 못했다. 반면 오전 약을 먹으면 병든 닭처럼 한두시간을 자게 된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저녁을 먹고 아파트 동산을 올랐다. 적당한 경사, 평지, 계단까지 골고루 갖춘 동산은 시간에 비해 제법 땀을 흘리게 된다. 5바퀴를 계획하고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일찍 땀이 송글송글 맺혀 걸친 점퍼를 허리에 감았다. 3바퀴를 돌고는 계획한 5바퀴를 포기하고 싶어진다. . 늘 그렇다. 살아가면서 힘에 부치는 일들이 많았다. 이런 작은 일에서부터 생계에 이르기까지 "아 이제는 그만하고싶다."라는 생각이 후들거리는 다리에서부터 겨드랑이의 땀까..

일상 2022.05.05

사람소리.

사람소리가 유독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 미치도록 외로워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이 세상속에서 살아있구나하는 그런 느낌을 느끼고 싶을 때 말이다. 책 한권들고 카페에 나와 책은 덮어두고 벽에 기대 지긋이 눈을 감았다.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시대를 거스른 팝송과 두런두런 사람들의 소리. . 아. 저분은 공무원이구나. 저분들은 팔자도 좋지. 남편들은 출근하고 여자들끼리 수다구나. 커피를 가는 기계소리. 달그락달그락 에그타르트 굽는 그릇소리. 모처럼 세상소리 속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 한 사람이 올때 그 사람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우주가 온다는 드라마대사처럼 나의 소우주가 사라져버린 날로 부터 어제까지. 그래도 지루한 기다림뒤에는 새롭게 더 튼튼한 우주가 세워질줄 알았다. . 하지만 그 우주를 무너..

일상 2022.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