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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사나이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불리게 된 까닭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행의 그림자를 잘 피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흔한 숫자맞추기는 커녕 어릴적 보물찾기조차 잘 하지 못했다지요. .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힘들었고, 누구보다 눈물 날 일이 많았고 누구보다 고생도 많이 했다지요. 하지만 그는 분명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웠습니다. .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는 단 하나의 이유. 그것은. 누구도 찾지 못하는 네잎클로버를 잘 찾았습니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네잎클로버. . 어쩌면 그의 삶, 모든 행운은 그가 찾은 네잎클로버였는지 모릅니다. . 하지만 말입니다. 신이 네잎클로버를 만들었다면 그의 이름대로 ..

일상 2022.11.17

끝물이 달다.

달디단 끝물 사과처럼 오늘 가을은 아름답기만 하다. 어제는 하루종일 한여름 같은 태풍이 몰아쳤다. 예상치 못한 비바람에 나무는 온몸을 공포에 떨었다. 온 몸을 흔들어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것을 떨어뜨리며 몸을 지켜낸 나무의 의연함뒤에는 비에 젖은 나뭇잎의 잔해가 잔혹스레 딩군다. 그러거나말거나 오늘의 하늘은 말갛게 씻긴 얼굴을 하고, 선명히 윤곽을 드러낸 구름하나 걸쳐두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11월에 어울리지않는 다정한 따뜻함이 묻어난다. 월요병이라는 말이 있지만 난 아무래도 금요병에 걸릴듯하다. 한주간의 피곤이 쌓인 탓도 있겠지만 14시간의 노동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 편한 잠을 자본 적이 언제였을까? 잠과는 인연이 먼 사람이라 불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잠자리가 불편한건 불면과는 또다..

일상 2022.11.13

보라.

날이 차다. 마음의 온도는 이미 기준점아래로 떨어졌다. 11월에 들어서 예상치 못했던 따뜻함에 올해 느끼지 못하고 지나버린 인디언썸머를 떠올린다.하지만 11월은 11월이다. 몇일간의 이상기온을 깨뜨리고 뚝 떨어진 기온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움의 색깔은 보라. 그리움의 온도는 화씨 30도. 그리움은 지독한 외로움. 혼자 딩굴다 펼쳐보는 카톡프로필. 끊임없이 쫓게 되는 그리움의 뒷모습, 한 줄 멘트로 상상하게 되는 그들의 일상. 그 조차 알 길 없는 이들에게 느끼는 냉담과 소외. 스트롤을 멈추게 되는 사진. 뜨거워지는 피. 그래, 낳은 배는 달라도 받은 피는 하나로구나. .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춤사위인지 알 수 없으나 이미 원(怨)과 한(恨)은 다 풀어져나가고 느림과 여유속에 안도한 언니의 ..

일상 2022.11.10

바로의 장자로부터

바로의 장자로부터. . . 이곳에서의 그날이 다가올 때 뜬금없는 너의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지. “엄마 걱정하지마.난 그곳에 가지 않았어.” 엄마는 무슨 말인지 몰랐고, 넌 영상을 보내왔어. .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아니 일어날 수가 없던 일이 일어난 일앞에서. 걱정마라는 너의 말에 엄마가 안도할 수 있었을까? . 너의 오늘이 나의 내일이 되고 엄마의 오늘이 너의 어제가 되는 태평양을 건넌 이곳에서 엄마는 결코 “걱정하지 마”라는 말에 안도할 수 없구나. . 채 피지 못한 꽃봉오리들의 죽음앞에 어떤 잣대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할까. 애미 된 가슴은 그 어떤 잣대로도 납득할 수 없다. . 가빠오는 숨을 들이키며 가슴조차 쥐어뜯을 수 없도록 짖눌러 온 무게는 초록잎 돋우는 봄비의 잔혹이 아니었어. 그 무게..

기러기.

T의 일을 알게 된 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닫아두었던 SNS를 열어 그간의 일들을 시간순으로 재배열해본다.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아도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게토(ghetto)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굳이 나중심의 세상은 아니었다할지라도 그들과 함께 어깨를 견주고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시공(時空)에서 나만 지워진거다. 아니 철저히 나만 거세당한듯한 느낌이 든다.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과 T와 짝을 맞춘 H만큼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울컥 눈물이 쏟아졌지만 어쩔수 없다. 자신이 속할 수 없는 리그를 바라보는 것은 잔혹하다. 어쩜 나도 그러했을지도 모르는 시간에 생각이 미치자 두려운 마음이 든다. 얼마나 많은 잣대와 공의로 재단하고,교만한 검열로 틈을 찾는 이들에게 아픔과 슬..

일상 2022.11.05

눈부신 안녕.

모진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분신을 잘라낸 나무는 붉디붉은 피빛의 눈물로 떨어진 잎사귀를 마주한다. 오히려 떨어져 나간 잎새는 가벼이 바람에 몸을 실어 분분히 땅으로 떨어졌다. 눈부신 잎사귀의 헌신. 삶을 향한 이기심이 시뻘건 잎맥을 세운 죽음앞에 처연하게 느껴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이다지도 가까이 있다. 삶과 죽음이 마주한 그 자리에는 초록은 빛을 잃고 자꾸만 자꾸만 나뭇가지는 지면(地面) 가까이 기운다. 그렇다고 다시금 잇대어 붙일수도 없건만 무슨 미련이 남아 애써 땅으로만 고개를 떨어뜨리는 것일까? . 가을이 깊을수록 해는 짧아지고 그리움은 사무친다.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까닭은 내가 걷는 이 길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그렇다고 두려운것도 아니지만 그건 아마도 슬픔이 ..

일상 2022.11.03

하늘보다 더 푸른.

고국의 가을보다 이쁜 곳이 또 있을까보냐만은... 뉴욕의 가을도 예쁘구나. 어쩜 짧아서 더 안타깝고, 더 소중한지도 모르지.... . 고국의 가을은 온 산이 불타듯 시뻘건 단풍이 주를 이룬다면 뉴욕은 온통 노랑.연두빛으로 다시온 '봄'과도 같다. 나는 오늘 그렇게 유명하다는 뉴욕의 중심 센트럴파크에 서있다. 유독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내일은 오늘보다 더 기온이 떨어진다고하니, 10월임에도 내복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에도 내복을 팔까?"..... 추위에 약한 나로선 이쁜 경치보다 다가올 겨울이 염려스럽고, 살아갈 일들에 생각이 기우는건 어쩔수없는 가난한 이의 삶인듯하다. . 거리를 거닐며 떨어진 낙엽들을 보아도, 찬바람이 불어도 고국의 가을보다 처연한 느낌은 없다. 색감이 주는 느낌도 있겠지만 민소매..

일상 2022.10.28

그댄 바람소리 무척 좋아하나요.

비가 잦아 가을이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서둘러 색을 갈아입더니 이제는 후두룩 빗소리가 지나가면 바람따라 낙엽이 뒹군다. 이곳에 온 뒤론 날자를 잊어버렸다. 처음엔 시차에 적응되지 않아 어제 오늘 내일에 혼돈이 왔다. 그러다.. 내게 새로운 하루가 열려 그 하루가 저무는 것이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 까닭인지도 모른다. . 지난 주일 목사님 한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민 교회의 어려움 중 하나는 교인들이 떠나온 시절의 한국정서로 정체되어 있어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해 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즉 70-80년대에 떠나온 사람들은 해를 거듭해도 그분들의 정서와 사고방식은 떠나온 때에 머물러 그것들에 대한 깊은 향수속에 살아가기에, 교회에서만이라도 그것들을 향유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

일상 2022.10.25

가을... 그리고 그대.

저만큼 멀어져간다. 초록이 거리를 둔 것일까? 단풍이 떠나간 것일까? 우린 알지 못했다. 다만 남은 것의 허망함. 모든 것이 빠져나간 바스락거림. 더디게 뛰다 언젠가 멎게 될 심장. 잔망스런 흔적. 피처럼 붉게 각인되다. 버려지더라도 그 가까이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면 자신을 버린 비상. 그리움의 방향은 언제나 같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부재의 시간은 쌓여간다.

일상 2022.10.23

돈이 사람을 꿈꾸게 했다.

극심한 통증에서 벗어났다. 약이 듣기 시작한거다. 죽는 건 두렵지 않지만 통증과 고통은 두렵다. 무슨 괴변이냐싶지만 사실이다. 차라리 죽어버리면 매 순간을 견뎌야하는 통증은 없다. 지난 주 돈 벌일이 있었다. 모국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이목으로의 자유가 있고, 결코 일하겠다는 사람을 일 못할 사람이라 단정짓지 않는다. 함께 일했던 분들 중 내가 가장 젊다.아니 그보다 어리다. 대부분 70을 바라보시는 분들. 이런 일들에 뼈가 굵어진 분들이고 늘 해오던 일인것도 맞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런 일할 사람들?은 아니다. 모국에서는 배우신 분, 잘 사시던 분들이다. 단지 이곳에 온지 30해를 넘기면서 이런 일들에 뛰어들어 삶을 일구어 오신 분들. 3일 일하고 70만원 지금 환율로 따지면야 ..

일상 2022.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