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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21단어72자

3줄 21단어 72자. 충분했다. 그러고보면 마음을 전하는것에는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닌것 같다. 아니 말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궁색해지고 의도치않게 꼬여버리는 것이 있다. 오히려 단촐한 문장에 숨겨진 수많은 감정의 선들을 읽을 수 있다. . 그날은 비가 온 뒤였는지. 비가 흩뿌리던 날이었는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 비가 왔거나 간간히 비가 뿌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때의 흰두리미를 발견했고, 그것들을 찍기 위해 나는 물길을 바지끝이 적는지도 모르고 뛰었다. 괜찮은 사진을 찍었을까? 아니다. 사진 초년병은 이런 날은 사진찍기 나쁜 날이란 것을 몰랐다. 피사체만을 쫓는 열정은 뜀박질하는 심장만큼 대단했지만 두리미 사진은 찾을 길 없다. 결정적 순간은 날아오르는 두루미떼가 아닌 그날의 열정이..

일상 2022.12.12

시간이 기르는 밭

"쥐도 새도 모르게 말이야. 잡아가서는 소금창고에 가둬놓고 죽도록 일만 시킨다고 해." 서해안 염전의 이야기는 언제나 공포에 가까웠다.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14년 염전노예기사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으니 말이다. 그런 염전을 나는 몇 차례 찾았던 적이 있다. 신혼여행으로 가게 된 엘도라도 리조트가 전남 신안에 있었던 까닭이다. 그날은 6월임에도 바람이 몹시 불었고, 그 휑함이 주는 적막함은 늦봄의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뭐랄까? 염전이 주는 그 무위의 고독이 좋았다. 그 후 3-4번 더 염전을 찾았던 것 같다.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소금 생산지라 일컫는 태평염전을 말이다. 염전에 얇게 깔린 바닷물은 반사경이 되어 하늘을 그대로 옮겨다놓았다. 무엇이 하늘이고 무엇이 염전인지 그런 건 아무렇지..

일상 2022.12.11

고양이 식당.(食堂ねこ)

오가와 이토의 달팽이 식당을 읽다. 2008년 첫 발행되어 2010년 영화화되었다. 그리고 올해 리뉴얼판이 나왔다. 초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리저리 이사다니다 없어지고 2018년 선물로 받았다. 오가와 이토의 글쓰기가 나는 좋다. 어깨에 힘주지 않고 그냥 나직나직 풀어내는 이야기가. 근사한 배경이나 특별한 사건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 그냥 그렇게 일상이 소재가 되어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전하는 문체가 좋다. 소박하면서도 따뜻함이 깃든 오가와의 작품들은 동화적 상상력을 잃어버리지말라고 말해오는 것만 같아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느낌이랄까? 딸애의 소포박스에 리뉴얼판이 들어있다. 다시금 읽게 되는 달팽이 식당. . 한 책을 3번 읽기란 드문 일이다. 뭐랄까? 세계적인 명작이라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전..

일상 2022.12.09

바다 끝.

딸아이의 우편물이 사라진지 3일만에 드디어 찾게 되었다. id가 없어 다른 분께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 물론 그분을 원망하거나 탓하는 것은 아니다.- 2번의 메일과 2번의 방문에도 우편물을 찾지 못했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번역기를 돌려 편지를 썼다. 무작정 우체국을 찾아 순서를 기다려 매니저에게 우편물 도착 메시지와 편지를 보였다. 딸아이의 편지를 기다리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매니저는 문제없다. 말하고는 창고를 살펴보기 시작했고, 우편물을 건네 받았다. 상자를 건네 받는 순간 울컥하니 눈물이 났다. "이곳에서의 생활 무엇하나 편한게 없구나." "바보같이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눈물에 당황한 매니저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Don't worry . ..

일상 2022.12.06

집이 그립다.

돌아갈 집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간절히 집이 그립다. 햇살이 거실 끝까지 들어와 그곳에서 살면 모든 것이 순적할 것만 같았던 곳. 하지만 거실 가득한 햇살도 삶의 어둠은 걷어가지 못했다. 왜 사람은 힘이 들면 집이 그리워지는 것일까? 사실 집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온기가 그리운 것일터지. 곤한 몸을 이끌고 가면 맞아주는 얼굴이 있고, 나와 같은 36.5부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손길. 그것이 그리운 것이야. . 죽을만큼 힘들었다. 늘 그렇다. 죽을만큼 힘들지만 죽지 않았고, 살아있으며 내일이면 또 눈을 뜨고 나는 또 일을 하고 있겠지. 이게 사는거니까. 그리고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꿈이 있으니까. 마당이 있는 감나무가 있는 작은 집.

일상 2022.12.03

Gracia

춥다. 추워도 이렇게 벌써 추워지면 안되는거 아닌가? 풀지 않았던 박스에서 막둥이 롱패딩을 꺼내입고 아이합(ihop)으로 갔다. 5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어둑어둑해진 거리. 버스 정류소에도 사람이 없다. 오늘은 저녁을 야무지게 먹고 싶었다. 아니 내일부터 3일간의 뒷일들을 해 내려면 먹어야한다. 이곳에 오고서 밥양이 늘었다. 몸을 쓰는 일을 하면서 양이 늘었다. 아니 늘렸다고 해야 옳다. 힘이 딸려서 일을 해 내기가 어려웠다. 밥힘이라는 말을 이제야 경험하고, 밥힘으로 일한다는 말도 이제야 인정하게 된다. 내일부터 막강 한파를 이겨내려면 더더욱 든든히 먹어야지. . 평소라면 빵한조각이면 되지만 오늘은 콤보. 계란이 두개에 헤쉬포테이토까지 든든하다. 이곳은 매니저가 스페니쉬인지 직원 대부분이 스페니쉬다...

일상 2022.12.02

이다지도 삶이 무거운데....

6996마일을 날아가야 닿을 수 있는 곳이건만 날씨만은 닮아 있어, 이곳이 그곳인듯, 그곳이 이곳인듯 종종 나는 헤매이게 된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마지막 남은 잎사귀를 기필코 다 떨어뜨려 놓겠다는 모진 바람에 가지는 이리저리 몸을 흔들고, 바닥을 뒹구는 낙엽은 내린 비에 반사되어 모체로부터 이어받은 자신의 색을 가감없이 토해버린다. 이렇게 한 계절이 또 지나가는구나. . 모든 것이 빛을 잃는다. 여름의 끝자락, 그러니 가을의 초입이라 할까. 브루클린 코니아일랜드비치를 찾았다. 아마도 한 두 전주즈음 총기사고가 있어 막둥이는 가지 않겠다고 했지. 이미 시즌이 끝난 비치였던 까닭에 놀이시설조차 멈추어 있었다. 그렇게 분주했던, 그렇게 들떠있던, 열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시간을 낚는 은발의 낚시꾼들..

일상 2022.12.01

조각보 깁는 밤.

늦가을비가 무겁게 내린다. 도로는 물론 나뭇가지에도 늦가을비는 무겁게 힘을 더한다. 비를 머금은 나뭇잎은 힘있게 물줄기를 올려 가지에 붙어 있으려하나 그 몸은 한없이 무겁다. 계절은 거짓이 없고, 조락은 피할 길이 없다. 그렇게 비는 무게를 더해가며 또다른 계절을 달려 나간다. 이번 가을을 한 줄로 기록하면 바쁘고 아팠다. 육체의 노동이 이렇게 힘들단 말인가? 몸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그 숭고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뷰티그로서리(Beauty Grocery)에서 일한다고 하니 누군가 뷰티가 들어가 나랑 어울린다고 했지. 그러게 말이다. 아름다움을 위한 뒷일은 고달프고 고통스럽다. 어디 아름다움뿐이랴. 우리가 먹고 사는 그 모든 것에 누군가의 노동과 눈물이 있음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것을 모르는 것이 부(..

일상 2022.11.27

행운의 사나이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불리게 된 까닭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행의 그림자를 잘 피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흔한 숫자맞추기는 커녕 어릴적 보물찾기조차 잘 하지 못했다지요. .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힘들었고, 누구보다 눈물 날 일이 많았고 누구보다 고생도 많이 했다지요. 하지만 그는 분명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웠습니다. .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는 단 하나의 이유. 그것은. 누구도 찾지 못하는 네잎클로버를 잘 찾았습니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네잎클로버. . 어쩌면 그의 삶, 모든 행운은 그가 찾은 네잎클로버였는지 모릅니다. . 하지만 말입니다. 신이 네잎클로버를 만들었다면 그의 이름대로 ..

일상 2022.11.17

끝물이 달다.

달디단 끝물 사과처럼 오늘 가을은 아름답기만 하다. 어제는 하루종일 한여름 같은 태풍이 몰아쳤다. 예상치 못한 비바람에 나무는 온몸을 공포에 떨었다. 온 몸을 흔들어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것을 떨어뜨리며 몸을 지켜낸 나무의 의연함뒤에는 비에 젖은 나뭇잎의 잔해가 잔혹스레 딩군다. 그러거나말거나 오늘의 하늘은 말갛게 씻긴 얼굴을 하고, 선명히 윤곽을 드러낸 구름하나 걸쳐두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11월에 어울리지않는 다정한 따뜻함이 묻어난다. 월요병이라는 말이 있지만 난 아무래도 금요병에 걸릴듯하다. 한주간의 피곤이 쌓인 탓도 있겠지만 14시간의 노동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 편한 잠을 자본 적이 언제였을까? 잠과는 인연이 먼 사람이라 불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잠자리가 불편한건 불면과는 또다..

일상 202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