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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쓸모 - Chelsea Market

건물 역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도시의 변화에 따라 생명이 덧입혀지는 것이 있는 반면 한 도시가 쇠퇴하게 되면 그곳에 자리한 건물까지 생명력을 잃어가게 된다. 어떤 글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리베카 솔닛의 책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도시변동화에 따라 미국의 주요 도시에는 백인중심의 도심이 어느덧 외지인유입에 의해 변화를 갖게 되었다. 오래된 건물들은 조각들과 건물자체의 높은 예술성을 가졌지만 단기간 살다 이동하는 외지인들에 의해 관리가 되지 않아 그 생명과 가치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글이었던 것 같다. . 비오는 금요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 한 권을 챙겨 지하철을 탔다. 날씨 탓일까? 도서관을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렇게 동한..

일상 2023.06.24

엔도탄생100주년 - "바다와 독약"

- 엔도를 기념하며 다시 읽는 첫 번째 책 - 바다와 독약 - . '침묵'과 '깊은 강'은 엔도가 자신의 사후 관속에 넣어주기를 원했던 작품이고, 많은 이들이 읽고 사랑하는 책에 속한다. 그렇다면 '바다와 독약'은 어떤 책일까? 이 책은 '아덴까지' '백색인 황색인'을 잇는 엔도의 초기작품에 속한다. 서구 기독교와 일본적 영성사이의 거리감으로 방황하던 저자의 고뇌는 "백색인 황색인'을 통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바다와 독약'은 황색인의 '죄의식 부재'라는 주제의 연장선상에 자리한 작품이다. .. "바다와 독약"은 1945년 미군포로를 대상으로 실제 행해진 큐슈대학 생체 해부사건을 배경으로 인간의 죄의식을 다룬 수려한 작품이다. 비교적 초..

지성 2023.06.22

기억이 박제되는 곳.

1941년 문을 연 브룩클린 공립도서관이다. 7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 한시간 십여분만에 도착한 곳. 지하철에서 멀지않아 헤매지 않았다. 마침 오픈 시간도 9시라 기다림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단지 건물모양이 책모양으로 지어졌다는 말을 듣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역시 오길 잘했다. 이 도서관은 미국에서 5번째로 큰 도서관인데 무엇보다 멀티미디어 관련 자료가 많은 곳이다. 또한 에스프레소 북 머신을 이용해 서적의 주문형 도서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도서관은 책을 보관 보수하는 곳으로만 알던 나로서는 책을 제작한다는 말은 생소하고도 경이롭게 느껴졌다. 한국 도서관에도 이런 서비스가 제공되는 지는 알아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도서관의 이런 기능은 희소본이나 절판도서에 대한 접급성을 높여줄 듯하다. htt..

일상 2023.06.03

더욱 짙어진.

쉬고싶은 몸을 일으켜 도서관을 찾았다. 그 누군가는 내가 살아있는 것이 요행이다라고 말할만큼 몸을 돌보지 못한 시간이 길었다. 자신에게 냉혹하다는 것과 애쓰며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몸이 보내는 사인으로 절감한다. 영양제와 마그네슘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체중이 줄었음에도 몸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마음의 짓누름이 큰 까닭일까? 부채처럼 짊어진 삶의 흔적때문인지 알 길 없지만 하루를 형벌처럼 어깨에 두르고 걸음을 뗀다. 도서관 열기를 기다려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공원에 앉아 커피한잔을 마신다. 일주일에 한권 수혈받듯 책을 읽기위해 펼친다. 오늘의 책은 스벤 슈틸리히의 "존재의 박물관"이다. . 기대감으로 책을 사고 막상 읽어내지 못하는 책이 있다. 나는 글에 생명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까닭에 책을 선..

일상 2023.05.27

어쨋든 살아내기.

5월의 여린 잎사귀는 태양빛을 온 몸으로 받아 연두빛을 길워낸다. 그 나무 아래에 서면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수맥이 어느새 핏줄을 타고 물을 길워 올린다. 머리로 부터 내리쬐이는 햇살은 연두빛. 찬란한 연두빛은 핏줄을 타고 오른 수액과 더불어 온 몸을 연두빛으로 물들인다. 붉은 태양이 아닌 연두빛 태양. 5월의 하늘은 그렇게 하늘인지 나무인지 알 길없이 하나로 이어져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몇 날을 앓았다. 그 앓음은 불규칙적으로 뛰는 심장과 호흡곤란으로 이어졌다. 10년이 지나지 않은 그 어느 해. 나는 이와같은 통증으로 심하게 앓은 적이 있다. 24시간 부착한 심전도기를 통해 미약한 부정맥 현상이 의심되나 심리적 요인이 더 크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해 나는 견딜수 없는 모멸감과 인생 겪어보..

카테고리 없음 2023.05.20

까닭.

모질어 지기 싫어서, 원망하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틀어지거나 무너지거나 더이상 일으켜 세울 것도 없이 깨져 버린 인생을 조각보 깁듯 기워가는 것이 더 비참할듯하여 깨진 홈을 메우고 갈라진 금을 지워버리는 것을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고이기도 전에 터져나오는 많은 말들 때문에 오히려 글을 쓸 수 없는 시간을 지났다. 글이 가진 그 위력을 알기 때문에 서슬 퍼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저 주억거리며 삼키는 삶.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이 오히려 살겠더라. 아직도 남은 마음의 그 무엇이 미련일지라도 미움보다 사랑이 낫지 않은가. . 스튜디오형 집 창문에 작은 에어컨이 달려 있는데 비가 올 때마다 타닥타닥 거리는 빗소리가 마치 처마에 빗방울 떨어지는 듯 해 마음은 더욱 ..

일상 2023.05.08

때로는 그리움도 지친다.

그리움은 안타까움을 원료로 삼는다. 안타까움은 간절한 마음을 원료로 한다. 간절함은 닿을듯 말듯한 아슬함이 팔할이다. 즉 어느정도의 가능성이 느껴질 때 간절함은 깊어지고 채워지지 않는 부분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가능성들이 점점 희박해지고 그 어떤 기미도 느껴지지 않을 때는 그리움이 아닌 절망에 빠지게 된다. 절망으로 가는 길목. 그리움이 지친다. 누군가의 오래전 사진을 보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젊은 날의 그 사람. 어설픔에서 느껴지는 순진함이 낯선 얼굴에서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나역시 빛 바랜 사진으로 그의 기억에 자리하게 될까... 같은 시각에 탄 지하철이 오늘따라 길게만 느껴지는 것은 삶이 지쳐서가 아닌 그리움이 지쳐서이겠지. 마음이 어지럽다. 봄이구나 잔인한 4월이구나.

카테고리 없음 2023.04.26

연초록빛 너머를 볼 수 있을까.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분명 자신의 시간에 자신의 족적을 뚜렷이 남긴다. 그것이 봄이다. 봄이 사라진다면 여름은 오지 않을 것이고 가을이 겨울 또한 오지 않겠지. 그래서 연초록빛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생명의 경이를 깨닫고 성장 소멸의 과정을 봄을 통해 바라본다. 잔인한 4월이, 아픔의 흔적만 가득했던 시간이 지난다. 그렇게 천년같은 한해가 지났다. 비가 잦다고 불만가득했던 입술이 옹색해지듯 하루가 다르게 물기를 머금은 잎사귀는 풍성해지고 닿지 않았던 마른 손들이 도로를 지나 어깨를 두른다. 분명 오지 않을 듯한 봄이 온 것이다.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어느새 한해가 지난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 때 그 자리에 서 있는데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변한다. 한기 든 마음을 누..

일상 2023.04.22

두고 온 봄.

경상도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 아버지말씀 때문에 전라도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경상도 번호판을 단 차를 보면 차를 훼손한다는 둥 이런저런 말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아니 전라도 출신들과는 교제조차 드물었던 내가 전라도에서 몇 년을 살게 되었다. 그것도 방구석에서 시간을 죽인 것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전라남도 곳곳을 다니며 사계절을 보냈다. 계절마다 산과 들이 어떻게 색들을 바꿔 입는지. 몸을 불렸다 몸을 쇠하여 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보냈다. 지금은 낯선 이역 땅에서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의 성장 대부분을 보낸 경상도 땅이 아닌 전라도 땅이. 그 산과 강이 잿빛을 띄는 바다가 미치도록 그립다. . 뉴욕의 날씨는 ..

카테고리 없음 2023.04.06

클로버(St. Patrick's Day)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옷차림으로 오늘이 성패트릭데이라는 것을 알았다. 볼리비아에서 온 23살의 미카엘라를 통해 2시에서 4시 5번가에서 퍼레이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몸은 무겁고 한기가 느껴졌지만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축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표정의 풍성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순진한 웃음과 벽을 허무는 대화 역시 그러하다. 해 맑은 아가의 웃음과 천진함은 두려움을 느낄 때부터 사라진다. 낯선 이를 향해 의심없이 웃던 아가가 어느 순간 불안과 공포 낯섦을 인지할 때 자지러지게 울게 된다. 이곳에 와서 느끼는 것은 이들의 얼굴은 그런 불안과 공포가 드물다. 눈이 마주치면 표정이 굳는 것이 아닌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간다. 순수가 갖는 힘을 그..

일상 2023.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