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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살아내기.

huuka 2023. 5. 20. 02:15

5월의 여린 잎사귀는 태양빛을 온 몸으로 받아 연두빛을 길워낸다. 그 나무 아래에 서면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수맥이 어느새 핏줄을 타고 물을 길워 올린다. 머리로 부터 내리쬐이는 햇살은 연두빛. 찬란한 연두빛은 핏줄을 타고 오른 수액과 더불어 온 몸을 연두빛으로 물들인다. 붉은 태양이 아닌 연두빛 태양. 5월의 하늘은 그렇게 하늘인지 나무인지 알 길없이 하나로 이어져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몇 날을 앓았다. 그 앓음은 불규칙적으로 뛰는 심장과 호흡곤란으로 이어졌다. 10년이 지나지 않은 그 어느 해. 나는 이와같은 통증으로 심하게 앓은 적이 있다. 24시간 부착한 심전도기를 통해 미약한 부정맥 현상이 의심되나 심리적 요인이 더 크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해 나는 견딜수 없는 모멸감과 인생 겪어보지 못한 수치에 내몰렸다. 아마도 그것이 원인이었을터이지. 그때와 동일한 현상을 경험하지만 그 까닭을 아는 나는 시간을 견디는 것을 선택한다. 지하철 안에서도 일을 하다가, 책을 읽다가도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심장통증은 깊은 숨을 내리쉴 수 밖에 없다. 통증과 더불어 떠오르는 한 때. 아프게 기억되는 이름이 있다. 나는 그것이 주는 통증을 알기에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나의 이름만큼은 그렇게 아프게 기억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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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걷기 좋은 계절은 없을 듯해 지하철 환승을 하기 전 주변을 걷는다. 그러다 우연히 책방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여간 기쁜 것이 아니다. 뉴욕에서도 가장 번화한 맨해튼 그 곳에서도 유명 상가들이 늘어선 록펠러 센터를 지나는 6번가가 부근  McNally Jackson book store있다. 처음에는 서점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스쳐지나가다 몇 걸음을 지난 뒤에야 책이 주는 그 느낌 기억되는 형태로 가던 길을 멈췄다. 다시금 되돌아가 윈도우를 찬찬히 살폈다. 분명 책이다. 전부 영어책. 다른 언어로 쓰여진 책은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책이 주는 위로는 크다. 이런 나를 사진에 담아 준 딸아이보다 어린 볼리비아인 친구가 고맙다. 사진은 그 시간의 위로까지 박제하고 순간의 행복을 연속선상에 세워둔다. 

새로운 글을 적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공의 소설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투영되지 않는 글은 생산되지 않는다. 아직 나는 지금의 나를 표현할 길이 없고, 아니 표현할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스란히 토해버리고 싶지 않은 무언의 걸림이 있어 주춤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얼마간 적어가려 한다. '캐러밴'으로 이곳에 온 그 누군가의 눈을 통해 나자신을 마주한다. 우리 모두는 난민으로 이 지구별에 왔고, 나는 이중국적의 난민으로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성장기를 겪었다. 나의 삶의 고통은 그 누군가가 아닌 내가 견뎌내어야 할 짓눌린 삶의 이력이 되었다. 타인의 아픔보다 자신의 고뿔이 더 고통스럽다지만 나는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들으며 내 삶의 전반을 짓눌러 온 그 고통이 고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두운 밤 차가운 강에 몸을 던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기둥삼아 휘감겨 올라가는 나의 삶의 족적. 언제 완성될 지 알수는 없으나 시작된 이야기는 반드시 끝을 맺기에 그날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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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겠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 남은 시간은 제일 잘하는 공부를 해보기로 마음 먹은 것은 잘한 일인듯하다. 올 한해는 영어공부를 다음해는 또 다음해에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고,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돌아가야겠지. 인생이란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인생을 지금 이대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 다시금 나로서 빛날 수 있는 굳이 누군가가 다시금 나를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염원에서가 아니라 나로서 살아내고 견뎌낼 수 있는 내공을 갖는 것. 그것을 위해 가장 잘하는 것을 하는 것이 지혜겠지.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어떻게가 아닌 어쨋든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쨋든 살아내야 그 다음 어떻게가 있는 법이니까. 당신들의 여유와 허영에는 하루하루 겨우 살아내는 이들에게 배려가 없다는 것을 일생 알 길 없다는 것을 그들이 어찌 알까. 어쨋든 살아내는 오늘 하루가 내일 또 어쨋든 살아내야만 하는 하루로 이어질지라도 나는 어쨋든 기필코 살아낸다.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