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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라기

호르륵 호르륵 숨을 불어 넣을 때마다 구슬 구르는 소리가 좋았다. 어머니는 어린 나의 목에 호르라기를 걸어주셨다.길을 잃거나 무슨 일을 만나게 되면 호르라기를 불라고 하셨다. 그러면 엄마가 달려올거라고, 엄마의 손에도 나와 같은 호르라기가 있었고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엄마의 호르라기 소리를 듣고 찾아오라고 했다. 어린아이 유괴와 길 잃어버리는 일들이 잦았던 그 시절 호신용으로 걸어주신게 아닌가 싶다.몇 살즈음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일곱살이 되기 전이었던듯 하다. 나는 길을 잃었다. 얼마나 헤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법 해가 기울고서야 파출소에서 허둥거리는 아버지의 손으로 인도되어 집으로 돌와왔다. 집 가까이 왔을 즈음 나는 "호르륵, 호르륵" 호르라기 소리를 들었다. 엄마가 눈물범벅이 된..

일상 2018.02.15

그 적당함에 못 미쳐서....

적당함의 미학. 적당한 자신감. 적당한 가난, 또는 적당한 풍요로움, 적당한 좌절감, 적당한 성실, 적당한 안정, 적당한 거짓말. 적당한 슬픔, 적당한 싫증, 적당한 기대. 또는 적당한 체념 ... 이것들이 인생에 깊이를 더하고 그늘을 드리우며 좋은 맛과 향기가 나는 존재로 만들어 준다. ...........소노 아이코 에세이 .적당히라는 말을 적당히 생각해보면 그 모호함과 불분명함에 어느정도?라고 되묻게 된다. 하지만 적당히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그렇게 불분명하지도 모호하지도 않다. 적당히....1. 정도에 알맞게 / 2. 엇비슷하게 요령이 있게어떤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에 근접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도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대충 얼버무리거나 대충대충이 아닌 상당히 엄격..

일상 2018.02.07

PAX 팍스 / 사라 페니패커

사랑하는 나의 손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첫 번째 이야기.사라 페니패커의 “팍스(PAX)” / 존 클라센 그림 / 김선희 옮김 / arte출판 - - - “우정은 봄 햇살보다 따스하고 보드라운 것이란다.” - - - “최고의 친구는 바로 엄마 아빠란다. ” 사랑하는 나의 아가들아.오늘은 모처럼 창 가득 햇살이 들었단다. 배란다에는 흘러내린 물이 꽁꽁 얼어 있는데도 말이야. 할머니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참 좋아한단다. 마치 봄 햇살처럼 모든 것들이 포근포근해지는 느낌 같아서 좋아. 하루의 반시간을 자버리는 고양이들을 애써 창가로 옮겨놓았어. 착한 시로는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두 발을 다소곳이 모아 식빵 굽기 자세로 잠을 청하는 구나..할머니가 너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그건 말이야..

아티스트웨이 2018.01.27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2018.01.23.눅눅하게 햇살이 스민 희뿌연 아침이다. 내 삶 곳곳에 이런 눅눅함이 스며들어 무게를 더한다. 아침이 불편하다. 어차피 하루의 무게일진데....뭐가 이렇게 불편할까...어제 고신대학병원에 진료예약을 했다. 지난 수술후 지속된 통증과 통증부위의 확대로 정확한 검진을 위한 것이다. 기분이 가라 앉았다. 끝없이 절망이다. 그 순간. 카뮈가 내게로 다가왔다.늘 어려웠던 그가 다정한 속삭임이 되었다. 모호했던 말들이 가슴안에서 명징하게 의미를 찾아갔다. 그의 생각. 그의 말들을 붙들고 싶고, 더, 조금만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그이에게 카뮈서적들을 구입해달라고 했다. 이미 도피가 되어버린 독서활동으로 산처럼 책들이 쌓여있음에도 말이다. 가난을 심화시키는 독서활동이다. 하지만 지금 내겐 카뮈..

일상 2018.01.23

동화쓰는 할미.

2018.01.20. "불사신이 아니야. 죽는건 죽어. 하지만 죽는 방식이 다른 사람하고는 달라. 나는 달처럼 죽을거니까. 하느님이 이 세상에 태어난 최초의 남녀에게 죽을 때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어. 하나는 나무처럼 죽어서 씨앗을 남기는 자신은 죽지만 뒤에 자손을 남기는 방법, 또 하나는 달처럼 죽었다가 몇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방법. 그런 전설이 있어. " 달이 차고 기울듯이, 그래. 달이 차고 기울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거야. ........사토쇼고 .집안의 부도이후 이복 언니는 무당이 되었다. 그것도 '만신'이라는 제법 큰 신을 내림받았고 살풀이와 굿을 하는 제법 신통한 전문 무당이 되었다. 언니는 어려서부터 절을 좋아했고 대학에서는 불교동아리에 가입해 제법 열심히 절을 다녔..

지성 2018.01.20

동화한편 " 봉봉이의 심부름"

"봉봉이의 심부름" 세상은 눈을 감은 듯 온통 캄캄해지고 별님들마저 어디에 숨어버렸는지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귓가를 간지럽혀오는 자그마한 소리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아주 작고 천천히 들려오던 소리가 어느새 작은 북소리처럼 통통거리며 규칙적으로 들려왔어요. 저는 너무 궁금해져서 소리가 나는 창문가로 다가갔어요. 모두가 잠든 사이 비가 왔나봐요. 창문 밖은 더 짙은 어둠이었지만 내리는 비는 신기하리만큼 구분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빗소리와 비가 함부로 창문에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있자니 문득 함께 잠든 엄마의 모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갑자기 가슴이 콩콩거리기 시작했어요. 어둠이 무서워졌어요. 덜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어요. 그 거실에는 베란다를..

아티스트웨이 2018.01.19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몇일 전 딸아이의 감기로 방문한 병원에서 수면제 2주분을 처방받았다. 딱히 불면증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늘 생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내게 그림자처럼 가까이 있다. 누구나 한번즘은 자살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죄악된 본성을 타고난 인간이기에 신의 영역을 탐하는 교만인지도 모른다. 최근 자주 죽음을 연습한다. 삶의 무의미함이나 지난한 삶때문은 아니다. 무의미가 아니 의미의 망각. 지난한 삶이 아닌 이겨낼 힘의 꺽임. 내가 누구인가보다 누군가에게 있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소속감의 상실때문이다. .라는 책을 읽었다. "죽기로 결심하다." 어떤 이유로. 어떤 방법으로? 그리고 그 결과는? 호기심을 자극하기보다 왠지 뻔한 스토리로 흐를것 같은 추측과 교훈을 예상하게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기막..

지성 2018.01.14

낯설지 않음

언제나 죽음은 내 곁에 있었다.죽음이 곁에 있어서 오히려 살 수 있었다. 가까이 있는 죽음으로부터 지켜야 할것이 있었으니까.... 이제는 지켜야 할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옆에 있는 죽음을 바라본다.죽음이 낯설지 않다. 그렇게 느껴진 죽음이 오늘은 무척이나 더 가깝게 느껴진다.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를 유혹하는 정오의 햇살처럼 따스하게 느껴지는 죽음.엄마 품처럼 포근할 것같은 영원한 쉼.쉬고 싶다. 내 마음을 보듬어 주고 싶다.

일상 2018.01.06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 최혜진 / 북 라이프 2018.1.01.정말 마음 따듯해지고 좋은 책이다. 최혜진이라는 작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림책이나 애니매이션이 어린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성인들에게도 충분한 울림을 준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최혜진 작가를 통해 처방받은 그림책은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아마도 최혜진이라는 작가가 처방을 내리기전 의뢰인들에게 들려주는 깊은 고민에서 얻은 이야기들이 치료의 효과를 높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외롭고 지치고 상처받고 혼란스러운 당신의 마음을 다독여줄 그림책을 처방해드립니다."라는 다정한 말 한 마디로 시작된다.프롤로그와 총 21가지의 처방으로 주어진 그림책이 소개되고, 4명의 그림책 작가 이야기(볼프 에를브..

지성 2018.01.02

삶이란 그런 것인걸...

일기로 써내려간 일상. 2017.12.29. 쓸쓸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공기가 쓸쓸함으로 물들어 나의 가슴을 죄어온다. 쓸쓸함은 하이데시벨의 소리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고막을 찢을 소음이 아니다. 귀가 아플만큼 높지만 맑고 청아한 방울소리를 닮아 그 울림에 이내 젖어버리고 가슴은 죄어오는 까닭이다..먹을 만큼 먹은 나이. 이루어 놓은 것도 없는 허망함속에서 그럼에도 열심과 성실로 살아온 삶의 족적들은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로서의 삶이였건만 지금은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폐허속에 버려져 있다. 모든 것이 의미가 없고 허망하다. 하는 행동. 하는 모든 삶의 방식이 부딪힌다. 환영받지 못하고 나역시 환대하지 못하는 편협한 이기주의를 곱씹으면서 딱 그만큼의 인간이라는 처절한 패배의식을 맛본다. 지성인의 고상..

일상 2017.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