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로 써내려간 일상. 2017.12.29.
쓸쓸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공기가 쓸쓸함으로 물들어 나의 가슴을 죄어온다. 쓸쓸함은 하이데시벨의 소리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고막을 찢을 소음이 아니다. 귀가 아플만큼 높지만 맑고 청아한 방울소리를 닮아 그 울림에 이내 젖어버리고 가슴은 죄어오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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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만큼 먹은 나이. 이루어 놓은 것도 없는 허망함속에서 그럼에도 열심과 성실로 살아온 삶의 족적들은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로서의 삶이였건만 지금은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폐허속에 버려져 있다. 모든 것이 의미가 없고 허망하다. 하는 행동. 하는 모든 삶의 방식이 부딪힌다. 환영받지 못하고 나역시 환대하지 못하는 편협한 이기주의를 곱씹으면서 딱 그만큼의 인간이라는 처절한 패배의식을 맛본다. 지성인의 고상함이나 종교인으로서의 거룩한 성품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일까? 마치 오랫동안 침묵하는 신에대한 사춘기청소년의 반항과도 같은 무관심, 삐둘어진 표현, 그럼에도 갈망하고 갈등하는 .... 잠을 거의 자지 못한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밤의 무의미함들은 내게 어떠한 쉼도 허락하지 않는다. 일상의 톱니바귀가 완전히 뒤틀려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는 그렇게 그렇게 파탄되어가고 있었다.하잘것 없는 일상의 뒤틀림에 나는 짜증이 나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랜 시간 내가 만들어 놓은 일상이 무너져내려가는 것을 보고 있는 까닭일거다. 삶의 곳곳. 나의 정성과 나의 애절함과 간절함으로 이루어 놓은 것들이 조그만 계기가 주어지면 그것은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말 터였다. 사라진다면 나도 함께 사라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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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인이나 종교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나이에서나 깨닫다니 참 편한 삶을 살아왔구나싶다. 세상의 거침은 익히 겪어 알고 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거침을 이제서야 배운다. 척박한 세상보다 사람으로 인한 아픔이 더 큰 까닭은 애착과 기대라는 헛된 꿈들이 더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는 아무런 답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답을 찾으라고 답을 하라고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어른이란 존재는 그 상냥함과 사랑의 뒤에 언제나 배신과 또다른 생각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그런 순진한 신뢰가 나의 가슴에 아프게 와닿았다. 아니 오히려 순진함보다 그것은 나의 욕망에 충실히 빛나는 에고인지도 모른다. 지난 밤의 독한 결심을 지워버리는 강렬하고도 날카로운 아침햇살이 나를 기다린다. 잔인하게 반복되는 아침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나의 결심을 지워버리는 그 햇살이 두려워 늦은 아침을 맞이하는지도 모르겠다. 일어나 들이쉬는 숨. 그 공기가 심장부근에 고이면서 이내 무거운 압박감을 준다. 내가 맞이해야할 삶의 무게만큼. 괴롭다.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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