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13년만에 엄마를 만났다. "너희 엄마야."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한참 떨어진 곳에서부터 그녀는 자신의 엄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보다 진한 피 이런 거 아니였다. 마치 세월을 거슬러 거울을 보는 듯 이 세상에 자신과 닮은 사람이 두 사람이 있다는데 마치 그 한사람을 본 듯, 그녀는 먼 발치에서 엄마를 알아보았다.한 달 뒤 그녀가 엄마를 다시 찾았을 때 그녀의 엄마는 10년을 한 자리에서 장사한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없었다. 그녀가 가게문을 열어 젖혔을 때 어둠이 고요를 덥고 있었지만 그녀의 가슴에서는 "휘리릭" 바람소리가 났다. 마치 그녀의 가슴에 구멍이 난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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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아이들이 교회를 다녀왔다. 아랫집 여자가 "괜찮아?"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 말뜻을 이해 못했다. 뭐가 안 괜찮은거지? 현관을 열었다 모든 것들이 다 있다. 안괜찮을 것 없다....... 그런데 늘 그 자리에 있던 그가 없다. "길지 않을거야, 형식에 지나지 않아." 쪽지 하나. 거실 벽 티비에서 끊임없이 소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랫집 여자의 목소리만 들렸다."조금 전에 애들 할머니 오셔서 애들 아빠 짐챙겨 나가던데... "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사정에 의해 착신이 중지되었습니다. " 그녀는 언젠가 들었던 그 바람소리를 다시 들었다. "휘리릭" 그리고 나즈막히 읋조린다. "내 가슴에 구멍이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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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언제부터 구멍이 생긴 것일까? 그녀가 일곱살에 한국에 왔을 때 그녀에게 머릿속에 남아 있는 말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迷惑かけるな"(폐 끼치지마)。"良い子にしてね"(착한 아이가 되어야지)。어떻게 하면 착한 아이가 되는지 어떻게 하면 폐를 끼치지 않는지 그녀는 어려웠다. 늘 선택의 순간에 우물쭈물하는 버릇이 생겼다. 먹고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앞에서 주춤거리게 되었다. 큰 소리를 들으면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무슨 폐를 끼친것일까? 이렇게 하면 착한 아이가 될 수 없구나. 한번씩 고개를 숙일 때마다 피요피요 가슴이 종이 떨리듯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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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유독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7살 아빠손에 이끌려 한국에 오면서 생모에게 버림받았다는 거절감은 바늘이 지나가도 자국이 남는 문풍지가슴으로 만들었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다만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면 불안했다. 문풍지 가슴이 불안한 기운에 파르르 떨리면 서둘러 지금의 행복에서 벗어나야 지금까지 누린 행복을 지킬 수 있다는 미신?같은 신념이 그녀에게 있었다. "지금으로 충분해." "더 행복하면 비누방울처럼 터져버릴지도 몰라." "저 사람이 등을 돌리기전에 내가 먼저 등을 돌리는 거야.""참고 견디는 건 힘든 일이니까 나만 포기하면 돼" 그래서 생긴 그녀의 특이한 버릇.그녀는 한참 물이 오를 때, 그러니까 크라이막스. 절정의 순간에 "그만 할게." 라는 말을 던진다. 게임을 할 때도, 어떠한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에도 그랬다. 그것이 욕을 먹는 자리든 마지막 박수를 받는 자리든 말이다. 그게 문풍지 가슴을 가진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기보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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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며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성인이 되어 미처 방어도 하기전에 다시금 경험하게 된 상실은 그녀의 문풍지 가슴에 지나간 바늘자욱은 커다란 구멍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녀는 조심조심 그 구멍을 메워나갔다. 다른이들로부터 자신이 상처받을 것 같으면 먼저 스스로 상처를 주고 만다. 그게 덜 아플거라 믿으면서. 누군가 마음이 멀게 느껴지면 먼저 등을 돌려 몇일을 떠났다. 버림받는 것은 이제 그만.... 남겨지는 것은 이제 그만..... 금새 다시금 찢어질 문풍지라도 조심스럽게 그 구멍을 메워갔다. 덧바른 문풍지가 잘 견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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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제 시장을 다녀왓다. 초겨울이라 일찍 어둑해지는 집에 고요가 흐른다. 창가를 밝히는 스텐드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가슴이 파르르 떨린다. 이상하다. 서둘러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그이가 없다' 전화를 했다. '전원이 꺼져 있으...." 휘리릭. 가슴에서 바람소리가 났다. 덧바른 문풍지가 떨어졌나보다. 책상에 쪽지가 하나 있다. "잠깐 나갔다 올게. 먼저 저녁먹어요." 불안하다. 휘리릭, 휘리릭,. 바람소리가 자꾸난다. 이명이 날것같다. 계속 계속 계속 휘리릭 휘리릭...걸었다. 가슴속 바람소리인지 코끝을 빨갛게 얼리는 저녁바람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휘리릭 소리에 맞춰 발을 옮겼다. 바람부는 대로 휘리릭 소리가 이끄는 대로....고속도로IC까지...한시간 40분.걷고 또 걷고....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아니 그녀는 갈 수 없었다. 그 길이 그녀가 갈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 .휘리릭 휘리릭. 누가 멈춰주면 좋을 것 같은데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어지럽다. 그녀의 귀에서는 여전히 가슴바람소리가 구멍소리가 들려온다. "휘리릭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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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집에 돌아왔다. 그녀는 그가 안아주길 원했다. 그가 안아주면 가슴구멍에서 이제 그만 피리를 불것 같았다. 하지만 돌아온 그는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게 무겁게 가라앉아있다. 불안한 그녀의 가슴앓이만큼 그또한 아팠나보다. 그녀는 그를 보자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녀는 안다. 휘리릭 피요피요 가슴구멍소리가 쉼없이 드나들어도 이번만큼은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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