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달빛도 때로는 잔인하다.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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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고즈넉하니 산머리에 내려앉을 즈음 날 몸 가지에 막 자른 애기 손톱 같은 달이 걸렸다. 어젯밤 꿈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를 보았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으셨던 것일까? 난 한참을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모았다. 꿈이란 것은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깨고 나면 흩어져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그렇게 귀를 모으고 들었던 이야기들이 흩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가 그립다. 단 소리 한번, 포근한 안아줌 한 번 없었던 엄한 아버지셨지만 그 존재만으로 돌아올 집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갈 그 집이 없다. 어둠이 내린 산머리는 이제 어둠속에 잠겨 몸만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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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몸 된 가지는 한 낮의 소란에도, 자기 몸 떨어져 나간 자리가 채 아물지 않았음에도, 신음소리 한번 없이 그 많은 이야기를 안으로 삼켰다. 건너편 산이 어둠에 몸을 누일 때 허망하게 가릴 것 없는 가지는 여린 달빛에도 그 모습을 선명히 드러냈다. 벗은 몸에는 살을 에는 찬바람보다 달빛이 더 잔인하다. 어둠이 짙을수록 달빛의 잔혹은 날 몸 가지에만 깃드는 것은 아니다. 궁벽한 살림에도 여린 딸자식의 마음에도 스며들어 지친 몸 하나 누울 곳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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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애의 방학이 다가온다. 1월 20일 인도네시아 인턴 출국을 앞두고 20여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기쁨은 어미의 몫일 뿐. 딸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엄마. 내가 갈 집이 있어?” 방 두 칸의 좁디좁은 집. 방 한 칸은 아빠와 엄마가. 작은 방에는 둘째와 막둥이가. 거실에서는 셋째와 넷째가 지내는 곳, 큰애가 오게 되면 작은 방셋이서 새우잠을 자야하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내년이면 대학생이 되는 둘째도 지금은 작은 방이라도 자기방이라 부를 수 있고 그곳에서 막둥이랑 지내지만 대학가면 자기방도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내가 돌아올 곳이 없어질 거라 말한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친 몸으로 돌아와도 사춘기에 접어든 남동생이랑 지내는 그 방이 어찌 편할 수 있으랴...
나의 아버지는 존재만으로 돌아갈 집이 되어 주셨건만 나는 그 아버지의 반도 못 살아내고 있으니 내 살아온 삶의 헛헛함은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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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만 내어 놓았던 산이 어둠에 묻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어둠속에 높아진 달이 고른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 날 몸의 가지는 눈을 들어 그제야 옆을 바라본다. "날 몸은 나만이 아니구나." 드러난 날 몸은 이제 부끄러움이 아니다. 이른 봄 생산의 고통과 한 여름 성장의 고통이 남긴 흔적이다. 달빛에 드리운 그림자들은 서로를 향하고 길게 뻗어 하나의 그림자를 만든다. 날 몸의 연대. 그들은 여린 가지를 부비며 서로에게 말해본다. "겨울밤이 길어도 아침이면 해가 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