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7일
오늘 우산없이 공원으로 갔다. 늘 앉던 벤치. 그 벤치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봄을 지냈다. 그렇게 그 벤치는 시간의 흔적이 앉아있다.. 하지만 오늘은 나보다 먼저 빗방울이 앉아 있다.
"잠시 함께 앉아도 될까요?"
머리위로 바람이 분다. 언제나 바람은 자신의 존재를 나뭇잎 피리로 드러냈다. 하지만 오늘은. 나무를 흔들어 빗방울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다. 기분 좋다. 까만 밤. 가로등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석으로 만든다. 살짝살짝 초록잎을 끼워내는 크리스탈의 영롱함. 내 머리에 떨어지는 것은 빗방울이 아니라 반짝이는 보석이다. 내 온몸은 비에 젖는 것이 아니라 반짝임으로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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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일본으로 가기 전 눈물을 감추기 위해 우산없이 비를 맞으며 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내리는 빗줄기가 제법 굵어서 마치 비의 매를 맞는 것 처럼 따금거리며 아팠다. 마치 그 때리는 비의 매로 눈물이 나는 것 처럼 그렇게 아프게 울며 걸었던 날이 있었다. 어쩌면 오늘 비의 매를 맞으며 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포근포근.
몸에서 피어나는 수증기의 온기만큼 따뜻한 비. 다정하다. 봄비는 회초리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꽃으로 찾아왔구나. 자신의 온몸으로 나의 눈물을 닦는다. 나는 그렇게 비와 함께 대지의 어머니의 품에 안긴다.
"이제는 쉬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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