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도 이제 끝이다.
4월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잔인하고 아픈 달로 기억된다. 제주 4.3사건을 시작으로 4.19혁명, 최근 4.16세월호 참사까지 한국 근현대사 중 수많은 희생과 이에 따른 정치 사회적 변화가 가장 큰 폭으로 이뤄진 역사적 사건이 몰려 있는 까닭이다. 내 생일이 들어 있는 4월. 유난히 나의 출생에 예민했던 나로서는 이 말조차 나의 불행을 더하는 듯해서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해마다 겪는 4월은 내게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잔혹을 더한다.
어제 오늘 다리를 다친 두마리의 길양이를 보았다. 사람이 두려워 사료를 줘도 먹지 않고 피하기만했다. 상처는 이렇게 대면할 용기를 꺾을 뿐 아니라 호의와 선의를 가진 이들에게조차 신뢰를 허문다. 길양이의 삶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있고 가장 밑바닥 연약한 생명으로 이 땅의 도덕성을 드러내보인다. 길양이 삶에는 1년 12달이 그렇게 위험에 노출되어 있겠지만 다리를 다친 그 녀석에게는 유독 잔인한 4월로 기억되겠지.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일까?
난 요즘 곧잘 길을 잃는다. 믿어왔던것들. 내가 의식을 가지고 가르쳐왔던 것들이 일순 허물어진다. 그것이 틀려서가 아니라. 거부되어짐과 반감으로 다가옴을 경험한다. 나의 사고를 지키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맞설 용기와 인내가 요구된다. 하지만 견뎌낼 에너지가 이미 없다. 아니 마지막 에너지까지 사용한다 할지라도 과연 받아들여질까? 하는 의구심에 이제는 그만 손을 놓고 싶어진다. 허물어짐. 나는 이렇게 나의 허물짐을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지혜를 상실했다.
내게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반드시 그러하지는 않다.
문제는 항상 여기서 비롯된다. 길양이의 안전이 내게는 중요하고 가슴아픈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삶의 사소한 문제들이 누구에게나 사소하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수용되지 못하고 이해를 얻지 못할 때, 한 마음이 되지 못할 때 불화(不和)하게 된다. 이때 요구되어지는 것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이겠지만 상식과 양심의 선에서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키고자 하는 것은 상식과 양심의 선에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일까?
계절의 여왕 5월이 다가온다.
가난한 자들에게는 4월보다 5월이 잔인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아이들 학교도 재량휴업일로 안간다. 챙겨야 할 것이 많고, 아이들이 집에 있는 날이 늘면 지출도 늘어난다.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는 이들은 불편한 가슴앓이만 할 뿐이다. 자주 길을 잃는 요즘의 나는 내자신이 점점 두려워진다. 단호한 결정을 해야 하는데 머뭇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연약해진 육신을 핑계로 마땅히 해야할 일들. 지켜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없다. 5월을 더욱 잔인하게 만들지 아니면 여왕으로 누릴지는 지금 오늘 나의 모습이 결정할 터인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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