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그 적당함에 못 미쳐서....

huuka 2018. 2. 7. 11:05

적당함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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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한 자신감. 적당한 가난, 또는 적당한 풍요로움, 적당한 좌절감, 적당한 성실, 적당한 안정, 적당한 거짓말. 적당한 슬픔, 적당한 싫증, 적당한 기대. 또는 적당한 체념 ... 이것들이 인생에 깊이를 더하고 그늘을 드리우며 좋은 맛과 향기가 나는 존재로 만들어 준다. 

                          ...........소노 아이코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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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라는 말을 적당히 생각해보면 그 모호함과 불분명함에 어느정도?라고 되묻게 된다. 하지만 적당히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그렇게 불분명하지도 모호하지도 않다. 

적당히....1. 정도에 알맞게 / 2. 엇비슷하게 요령이 있게

어떤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에 근접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도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대충 얼버무리거나 대충대충이 아닌 상당히 엄격한 선이 '적당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적당히 간을 본다는 뜻은 간이 맞지 않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다. 싱겁거나 짠 것은 적당히가 아니다. 분명히 싱겁지도 짜지 않아야 한다는 것. 최고의 맛을 내지는 않더라도 그 맛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당히는 어려운 말이다. 아무나 누릴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것을 할말한 능력을 가진 사람.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런 까닭에 이 "적당히"야 말로 삶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만이 누릴수 있는 호사스러운 단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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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들면서 아침이 더디 오기를 바란다. 아니 깨어나기를 바라지 않는지도 모른다.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떼어내고 싶은 팔의 무게만큼이나 무겁다. 겸손으로 이끄는 가난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하는 가난이다, 책임져야 할 자식들에게 고개들지 못하는 수치심으로 다가오는 가난은 적당한 가난이 아니다. 핍절한 가난은 물질적 가난 뿐 아니라 마음의 가난을 이끈다. 서로를 향한 고운 시선보다 말 한마디가 아쉽고 오해를 부른다. 악한 마음이 감추임없이 드러난다.그래서 가난과 고통은 타인과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 믿음의 싸움. 즉 내면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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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애 셋을 데리고도 이런 가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그때의 적당한 가난과 적당한 어려움들은 나를 겸손하게 말들고 아이들을 성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때의 가난과 어려움이 나를 향기나게하고 아이들을 성장시킨 적당함이었다는 것은 오늘에서야 깨닫는다. 어쩌면 오늘의 적당하지 않은 가난과 적당하지 않은 고통들이 내일의 어느 한 시점에서 적당하지 않음을 적당함으로 고백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적당하지 않음이 삶의 활력을 뺏어가고 오히려 많은 무기력으로 일어설 힘조차 앗아간다. 하루가 버겁다. 가까이 마주하는 얼굴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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