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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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많아 세를 드는 사람이 없었다. 3년이나 비어 있었다.그런데 그 집에 이사를 오는 것이다.다들 궁금했다. 늙은 어르신들일까? 아니면 알바생? 보증금 300짜리 집이니 정상적인 가정이 이사오지는 않을 것이다. 다들 예민하다. 장사하는 식구들이라 근처에 가게가 오픈하면 또 경쟁자가 생기는 것이니 촉각을 세우는 것도 당연하다. 이상하다. 이삿짐에 아이들 짐이 있다. 자전거도 있고, 드나드는 아이들이 한명, 두명....히휴, 20평도 안되는 집에 7식구가 산단다. 한달에 몇번씩 차로 가져오는 책은 얼마나 많은지 도대체 뭘 하는 집일까? 서점을 하다 망한 집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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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건강이 안 좋은지 남자는 늘 여자의 손을 잡고 시장 갈때도 바구니를 남자가 들고 있다. 바깥을 나갈 때와 들어올 때 확실히 여자의 안색이 다르다. 밝고 경쾌하게 나설때와는 달리 여자는 돌아오는 걸음에는 지쳐있고 난간을 붙들고 올라가는 폼새가 여사롭지 않다. 그리고 그뒤는 걱정어린 남자의 눈길이 따른다. 하지만 남자의 구부정한 허리와 끌듯 옮겨놓는 왼쪽 다리역시 그렇게 편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밝다. 힘이 넘친다. 남자애 셋은 사이좋게 자전거를 끌고 나가고 딸애는 차로 등교시키는 것이 남자는 요새 말하는 딸바보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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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다섯이 있으니 왠만큼 벌어서는 안될텐데 보아하니 남자나 여자나 일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집에 사는 걸 보니 모아둔 돈도 없는 듯한데 하루하루 사는게 신기하다고 횟집 총각과 노래방아줌마는 입을 모은다..그런데 이상하다. 늦은밤 가게 문들이 하나 둘 닫히고 북적거리던 골목이 침묵할 때 큰 길가로 난 부부의 방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한 사람의 울음이 아니다. 부부가 엮어내는 진양조의 울음은 까닭알 수 없는 가슴 후벼팜이 있었다.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더니 자식문제인가? 언제나 손을 잡고 다니는 부부이기에 부부문제는 아닌듯 하지만 여자가 아픈것인가? 울음이 하 구슬퍼 횟집 총각은 노래방 아줌마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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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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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단 하루도 여유로웠던 날이 없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혼자 억척스레 공부했고, 늦은 신의 부름에 갑절의 열심으로 그것이 전부 인줄 알고 살았다. 교회밖에 몰랐고 가난하게 자라 딱히 물질의 욕심이 있지도 않아 주어지는대로 감사하며 살았다. 그러다 작년 사랑하는 아내가 소천했다. 15년을 한결같이 자신의 옆에서 묵묵히 가난과 힘든 사역을 견뎌내준 아름다운 동행자였다. 이제 아내를 간병하기 위해 내려놓은 사역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곳 저곳 이력서를 넣어본다. 그러나 어느한 곳 혼자 있는 목회자를 받아주는 교회가 없다. 가슴이 무너진다. 아직 상실의 슬픔도 극복하지 못했는데 남자는 어찌해야 할지를 모른다.하지만 하나님의 신묘막측하심을 무엇으로 예측할 수 있으랴. 그 남자는 상실의 현장에서 그 여자를 만났다. 이제는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돌아가기 원했던 목회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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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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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출생부터 아팠다. 한국인 아버지의 바람으로 낳은 일본아이. 그 아이가 바로 그 여자였다. 그 여자는 금융위기로 인해 부도가 났고 그로 인해 순탄했던 결혼생활은 깨어지고 말았다.그렇게 10년을 넘게 그녀 혼자 아이 셋을 키웠다. 그 여자는 늦은 신학으로 잘 나가던 학원강사를 접었다. 결혼실패라는 주홍글씨는 그녀에게 갑절의 교회 충성을 요구했다. 아니 어느 누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이런 자신을 사명자로 불러주신 그분께 감사함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싶었다. 하루도 쉬지 않았고, 아이들과 라면으로 생계를 이어가더라도 주어진 사역의 장소에서 맡겨진 영혼들을 위해, 빚을 지며 섬겼다. 10년 넘는 외로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을까? 그녀는 그 남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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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 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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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와 그 여자는 회복을 꿈꿨다. 아픔의 연대를 생각했다. 연약한 자들. 고통속에 있는 자들을 향한 말씀으로의 회복을, 말씀으로의 위로를 꿈꿨다. 상실의 고통속에 있는 자들. 깨어짐이 있는 아이들. 육신의 연약함 속에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깊이와 넓이를 더한 사역을 하고자 했다. 그 사역에는 풍성한 독서와 글쓰기가 있었다. 공간의, 지역의,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편지를 쓰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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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남자와 그 여자는 너무 빈손이라 개척은 먼 남의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사역지를 구하며 이력서를 넣었다. 사역지는 많았다. 하지만 사역지를 원하는 부교역자는 더 많았다. 규모가 있는 교회는 재혼이라는 특수상황이, 그리고 나이가 걸림이 되었고, 가족같은 교회는 많은 아이들과 필요이상의 스펙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렇게 그 남자와 그 여자는 돌아갈 교회를 잃었다.이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생계를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한다. 그 남자는 책과 글을 통한 전도자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그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접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라도 생계가 되지 않으니 별 수 있으랴. 그 여자는 오랜 바깥일로 살림사는 여자가 아니었다. 값싸게 오래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무리한 삶으로 잃어버린 건강에, 그 여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했다.그 남자가 자신의 글쓰기 마당을 벗어나면서, 그 여자가 자신의 무능을 탓하면서 둘은 그렇게그렇게 밤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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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보 깁는 20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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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손톱만한 달이 남아 있었고. 그 새벽에는 비가 내렸다. 그 비로 가을이 깊어진다. 아마도 그 남자 그 여자의 기도도 깊어지리라. 어리석은 삶, 참 바보같은 삶이였지만 다시 태어나 다시 사역지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태우며 살아갈것이다.그것이 그 남자와 그 여자가 받은 은혜다.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이렇게 읊조렸다. "하나님. 다시한번 당신의 목전에서 은혜입기를 원합니다." 만들다 남겨진 천 조각도 모아 이으면 예쁜 조각보작품이 된다. 그 남자. 그 여자는 세상으로보면 하자품, 쓰다 버린 조각이다. 하지만 그 남자 그 여자는 기대한다. 지금은 잇댄 조각들이 어색하다. 하지만 이 조각들이 완성되는 날, 참 예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 있으리라. 그것을 기워가는 것은 그 남자 그 여자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모두가 아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