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마다 별모양의 개나리가 거리두기를 하고 핀 걸 보니 기어이 봄이 오고야 말았구나.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때 그 늦가을의 시간이 함께 따라온다. 가을을 지나고 겨울이 지나 봄꽃이 피었는데 말이지. 누군가는 지우는 것으로 잊고 누군가는 새기는 것으로 잊는다면 나는 후자에 속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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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다.
이미 눈물샘조차 말라버렸는지 갈라진 마음이 더 아리다.
아프게 새겨진 그 시간과 그 장소. 지혜로운 자는 트라우마라 말했다. 아주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할 것이라는 예언과 더불어 건넨 처방전. 함께였을 때는 오히려 떠오르지 않았는데 혼자여서 속으로 곱씹어서 나를 망쳐버린 것일까?
비틀거리며 달리는 자동차. 좁은 차안을 울리던 소리. 흘리던 눈물과 앙다문 입술. 우울의 끝이 조현이라던가? 고장난 뇌조각을 애써 모음해보아도 틀러진 조각은 맞출수가 없다. 견딤의 시간의 끝이 눈부신 계절이 되지 못할지라도 이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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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버린 꽃을 보며 그래도 살아있으라는 명령처럼 들려서 애써 눈을 감게 된다.
"살아 있으라." 살아야하는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걸까? 다른 꽃들처럼 시들지도 지지도 못한 채 마지막 수분까지 날려가며 오늘을 견뎌내는 모습을 본다. 경이롭다. 정령 자신의 힘으로 저렇게 서 있지 못할터이지. 스콧 니어링처럼 곡기를 끊지도 못하고 저 꽃처럼 자신의 수분 한방울마저도 날려버리지 못하는 질긴 생의 욕망은 죽고싶다는 말조차 허망한 것으로 흩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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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을 휘감고라도 올라 기어이 해를 마주하는 담쟁이를 본다. 욕망함. 내게 남겨진 욕망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움. 회한. 무엇이 남아 있어 이다지도 나를 묶어두는 것일까. 나를 묶는 것들로부터의 자유. 그것만이 내가 갈망해야할 마지막 욕망일터인데 봄은 이미 와 있지만 나는 가을의 시간을 새기고 내 발을 묶어두려한다. 어리석음. 그게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