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의 정열과 파랑의 냉정이 합하여 만들어진 보라. 그 색이 발하는 분위기는 신비다. 그래서 그 옛날부터 보라는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극 소수의 사람에게만 허락된 색인지도 모른다.
이곳을 혼자 오게 되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2시간 가까이 섬과섬을 잇는 보라색다리를 걸었다. 초록의 바다위를 건너는 것인지 보라의 환상속에 내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섬에 있었다. 무엇을 보려하고 무엇을 벗어버리려 그곳에 간 것일까?알수 없다. 그럼에도 괜찮다. 왜냐면 그곳은 모든 것이 신비로 감싸진 보라의 세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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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에 보이는 다정과 신뢰가 그들이 바라보는 곳을 함께 보게 한다. 그들의 길들임과 우리의 길들임을 생각해본다. 길들임도 사랑도 드라마틱한 단회적은 것으로 이루어낼 수 없다. 무던한 시간의 무게와 함께 바라본 공간의 기억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내는 것이 신뢰다. 폭언과 강압에 의한 길들임으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상처와 고통뿐인 길들임에는 신뢰는 생길수 없다. 존재 자체가 무시된 대체물로서의 삶은 단순한 상실과 다르다. 살아낸, 살아있는 이 시간을 자꾸만 지워버리는 그 누군가에게 나는 살아있다고 그 시간을 살아왔다고 끝없이 소리 친다.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라는 것을 알지만. 혼자 그 섬에 내가 서 있을 거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그렇지 않던가? 우리의 인생이란 떠남으로 새로운 길을 만나고 그 길위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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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에 때아닌 장미를 보다. 노란 장미의 꽃말이 "이별"이다. 소담스레 피어올린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그녀는 무슨 이별을 하고 있을까? 아니 이별의 아픔을 간직했길래 저렇게 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고. 자기연민에 빠진 그누군가에게 자기연민이 무서운 병일수밖에 없는 까닭은 행복이 다가와도 자신의 불행에 집중해 그 행복을 놓치고 만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보라의 섬에서 발견한 노란 장미는 신비속에 피어난 고고한 자기주장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섬에 있었고, 느긋한 걸음으로 그 섬을 가슴에 품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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