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1216-13
설록 다원 월출산.
巖叢屹屹知幾尋 우뚝 솟은 바위산은 몇 길인지 알 수 없고
上有高臺接天際 위에 있는 높은 누대 하늘 끝에 닿았도가
斗酌星河煮夜茶 북두로 은하수 길어 한밤에 차 끓이니
茶煙冷鎖月中挂 차 연기 싸늘하게 달 속 계수나무 감싸네.
차밭이라고 하면 보성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차의 역사를 안다면 강진 월출산 자락에 위치한 설록다원을 떠오려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녹차의 대중화를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아모레퍼스픽에서 운영하는 설록다원 밭이다. 가을 하늘이 높아진 어느 날 강진으로 향했다. 목적지가 차밭이었던 것은 아니다.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을 찾기 위함이었지만 진입로가 공사 중으로 지나쳐 우연히 발걸음이 머물게 되었다. 도로 양편으로 펼쳐진 차밭은 밭이 아닌 초록 물결이 남실되는 차 바다였다. 차꽃이 한참 피었다 지는 시기인지 꽃들은 시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꿀과 가루를 모으는 벌들의 붕붕 거림은 차향에 고르게 섞여서 좋은 리듬을 만들고 있다.
전라도 강진은 차와 더불어 차를 즐긴 이들로 유명하다. 특히 다산 정약용, 초의선사, 이한영을 꼽을 수 있다. 다산이 유배되었던 다산초당은 백련암의 혜장선사와 더불어 차와 학문을 논했던 곳이기도 하다. 더불어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를 제자로 삼아 조선 후기의 차문화를 발전시켰다. 특히 정약용은 정차라는 약차를 즐겼는데 이 정차는 나중에 청태전과 더불어 강진을 대표하는 약차가 되었다. 초의선사는 1828년 차서(茶書)인 다신전을 저술했다. 다신전에는 찻잎 따기, 차 만들기, 차의 식별법, 차의 보관, 물을 끓이는 법, 차를 끓이는 법, 차를 마시는 법, 차의 향기, 차의 색 등을 다루고 있다.그들의 맥을 이어온 차인이 이한영이다.이한영은 다산의 마지막 제자인 이시헌의 후손으로 다산의 제다법이 이한영에게 전해져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전통 차의 맥을 백운옥판차로 잇는다. 백운 옥판 차는 강진의 명차 중 하나로 백운동 옥판봉에서 딴 찻잎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시판 차이다. 이렇듯 강진의 한국의 차역사와 맥을 함께 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강진의 녹차는 보성에 비하여 그 빛깔이 황금색에 가깝고 향은 더 짙고 무겁다. 보성이나 하동의 녹차맛에 비하면 단맛이 적고 드라이한것이 조금은 씁쓸한 성인의 맛에 가깝다. 학문을 하고 철학을 하는 이들의 맛에 닮아 있다고나 할까? 차 한잔에 영혼을 팔았다는 거성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까닭은 그윽한 그 한잔의 차가 정신을 맑히고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까닭은 아닌지 모르겠다. 월출산 자락아래 태양을 고르게 받아 찻잎은 몸을 부풀린다. 초록에 맞아떨어지는 크림색의 꽃과 황금색의 꽃수술은 초록 찻잎에 다 담겨있다. 초록 찻잎을 우리면 황금빛을 띠는 까닭은 차꽃의 수술에 닮아 있다. 하늘의 기운과 산의 정기를 온몸에 받아 자란 강진의 녹차. 추워지는 겨울 온몸을 감싸 안을 온기가 되어줄 듯하다. 차밭에서 바라본 바위가 드러난 월출산. 사나이의 기백이 느껴지는 멋진 산이다. 예로부터 문인과 예술인들이 키워낸 강진이다. 몇 번을 다녀도 강진의 매력을 깨닫지 못했는데 오늘 차밭에서 바라본 월출산. 강진만. 강진을 사랑하게 될 듯하다. 깊어지는 차향만큼 가을이 깊어간다. 가을이 깊어가는 만큼 마음속 그리움 또한 깊어만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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