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장흥보림사 - 시절을 견뎌낸 그 면면함.

huuka 2021. 10. 26. 20:06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 위치.
동양 3보림의 하나로 한국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정착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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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느끼기에 절만큼 좋은 곳이 있을까?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의 영향이겠지만 대부분의 절은 고즈넉한 산중턱이나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의 가장 큰 수혜를 받고 누리는 것이 절이 아닐까한다. 계절의 변화를 사면에 둘러놓고 볼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절이다.
나는 절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누리기 위해 발걸음을 했고, 그 자연속에서 여순사건과 ,6.25를 면면히 견뎌낸 역사의 한 자리를 보고 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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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산은 높지 않다. 나즈막한 산들이 겹겹이 둘러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 보림사가 위치한 가지산은 제법 산세가 깊다. 특히 500그루가 넘는 비자나무로 둘러쌓여 있는 보림사는 300년을 넘어가는 비자나무의 수령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사실 보림사는 송광사의 말사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그 지어진 역사만큼은 송광사보다 앞선다. 보림사는 동양3대보림(인도,중국,한국) 중 하나로 우리나라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정착된 곳이다. 원표 대덕(元表 大德)에 의해 창건된 보림사는 통일신라시대인 759(신라 경덕왕 18)년에 암자를 현재 절이 있는 곳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세웠다. 
이 작은 절이 보림사의 시작으로 그 후 100여년이 지난 859(신라 헌안왕 2)년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가지산으로 들어와 현재 절터에서 불사(佛事)를 일으키며 자리매김하게 된다. 보조 체징은 우리나라 9산 선문의 개창라 할 수 있는 도의선사(道儀禪師)의 법맥을 이어받은 선승(禪僧)으로 황학사에 잠시 머물던 중, 왕의 청의 받아 가지산으로 와서 선종 사상을 바탕으로 불법을 일으켰다

보림사의 여러 전각들은 여순사건과 6‧25를 거치면서 전각들이 대부분 불타버렸으나 나무 사천왕상이 자리 잡고 있는 천왕문은 화마를 면했다. 이 건물 안에 있는 사천왕상은 임진왜란 발발 전인 조선 전기에 조각된 작품으로 우리나라 현존 사천왕상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현재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몸통 내부에서 다양한 불교 경전들이 발견되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사천왕상은 대부분 무섭고 지옥문을 지키는 문지기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뭐랄까 보림사의 천왕상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장난이라도 걸고 싶은 개구쟁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보림사 대적광전. 대적광전은 화엄경의 주불이자 화엄경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인 ‘연화장 세계’를 관장하는 부처인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전각이다. 대적광전 안에는 본시 법신불(法身)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보신불(報身)인 아미타불, 화신불(化身)인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나 보림사의 경우는 철조 비로자나불이 단독으로 법상 위에 앉아 있다. 시간을 견딘 이 철조 비로자나불을 처음 알현한 순간 난 김동리의 "등신불"을 떠올렸다. 금불상이나 나무 불상만을 보아왔던 나로서는 사실 충격이 컸다. 온통 까맣게 불에 그을린 듯한 색감이 주는 그 그로테스크함이란...
이 비로자나불은 철로 만들어진 불상으로 신라 하대 (858,헌안왕 2년)에 만들어진 대작이다. 
대적광전 앞에 있는 보림사 삼층석탑과 석등은 철조 비로자나불이 조성된 지 10여년 뒤인 870(경문왕 10)년에 세워졌다.현존하는 통일신라 석탑과 석등 가운데 세워질 당시의 원래 형태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문데, 보림사 석탑과 석등은 위쪽 상륜부까지 거의 완전체로 보존되어 있다.

역시 계절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오래된 산사다. 새들의 작은 지저귐까지 느낄 수 있는 곳. 바람이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한 계절이 지나간다. 삶은 언제나 쉽지 않다. 아둥바둥 살아온 그 시간들이 다 헛되다 할 수 없지만 그렇게까지 살지 않아도 좋았을것 같다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다시금 그 시간을 살아간다해도 나는 변함없이 아둥바둥 살아가겠지. 그것이 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런 나를 수용하는 것이 나이를 먹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러 사변과 동란, 화마와 천재지변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낸 결정을 본다. 빛이 바래든 어디가 부서지고 마모되듯 상관없다. 시간을 견뎌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어려운 시간을 버퉁거리며 살아갈 지라도 여린 생명에게 감열매 하나 남겨두는 여유만은 나또한 간직하고 싶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