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계절이 바뀌기 전에는 꼭 비가 내렸다.
슬픔도 고독도 웃음도 희망도 같은 질량으로 내 몸에서 빠져나간다.
그렇게 또 한계절이 지나간다. 본성을 기억하는 깨어있음이 있다면 조금은 실수하고, 조금은 넘어져 있어도 괜찮다 자조했다. 그렇게 나의 봄은 더디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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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파트 동산에 올라 피어나기 시작한 꽃을 찍었다. 오늘에서야 사진을 보니 꽃들은 알고 있었다. 오늘 비가 오리라는 것을 말이다. 비가 오면 이내 저버릴 꽃잎에는 비장미를 찾아볼 수 없다. 알고 있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피어남으로, 하루를 살아감으로 그것으로 충분했다. 비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딱히 비애감에 빠지지도 않았다. 황금수술을 드리워내고 꽃가루를 도략질하는 꿀벌에 그냥 그대로 몸을 내어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보드랍지만 치명적인 비가 몇 번 더 올 것이고 그렇게 봄은 익어가고 꽃잎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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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던 처방을 받았다. 극도의 불안증과 공황장애가 갓 피어난 꽃송이를 흔드는 비처럼 내게 왔다. 나의 우주가 무너져버린 날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금 그 자리에 서 있다. 계절은 그대로이건만 나 혼자 나이먹고 취약함에 내버려져 있다. 평범하고도 지극한 일상이 내게는 왜 이다지도 힘든 일이란 말이더냐. 온 몸의 진액이 빠져나간다. 버퉁겨온 시간의 탑이 허망한 것이 되었고. 무엇보다 닿지 못한 마음이 허공을 맴돈다. 어쩌면 나는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꽃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글을 썻나보다. 살기 싫다. 생명을 돋우는 비이건만 꽃잎을 찢고 꽃대를 꺾는 위협이구나. 치명적인 사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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