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발레니나 스노우볼 오르골

huuka 2018. 7. 14. 17:27

 

+ 흔적 ............. 정희성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어머니가 벗어놓은 그림자만 남아 있다 
저승으로 거처를 옮기신 지 2년인데 
서울특별시 강서구청장이 보낸 
체납주민세 납부청구서가 날아들었다 
화곡동 어디 자식들 몰래 살아 계신가 싶어 
가슴이 마구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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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내가 남기는 것임에도 타인에 의해 인식되는 것 .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통과 상처로.......아버지의 나이만큼 먹어가는 요즘. 아버지가 내게 남긴 흔적들이 파편처럼 떠오른다. 나는 퍼즐조각을 맞추어가듯 그렇게 아버지의 흔적을 뒤쫓는다. 아버지의 흔적, 그것은 신맛 강한 자두를 깨물었을 때의 눈 찡그림과 더불어 삼킨 뒤의 침 고이는 달달함으로 떠오른다. 기억속의 아버지는 성장기에 경험한 아버지가 아니다. 조금 더 낭만적이고 조금은 나를 사랑해주셨던 느낌이 든다. 기억만큼 왜곡되기 쉽고 자기 방어적인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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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이 특심이셨던 아버지였지만 성탄절 만큼은 우리들에게 선물을 잊지 않으셨다. 국민학교를 들어간 때였으니 아마도 8-9살 무렵이었을 듯 하다. 아버지는 성탄이브 우리들에게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두라고 하셨다. 진짜 산타가 있는지 궁금했던 나는 쉬이 잠이 들지 못했지만 산타를 눈으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 만큼 치밀하셨다. 눈을 떴을 때 머리맡 위의 선물 상자의 크기를 보면서 포장을 뜯기도 전에 실망하기도 했던 성탄절의 들뜬 아침. 그 긴장감은 아직도 내 심박동수를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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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선물은 발레니나가 들어있는 스노우볼 오르골이었다. 밑에 있는 테옆을 감으면 눈이 흩날리며 발레니나가 음악에 맞추어 돌아갔다. 음악도 테옆도 발레리나의 춤도 한 없이 짧아서 손 아프게 돌려야 했지만 나는 정말 빨려들어갈 만큼 그 선물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첫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선물상자의 크기가 제일 작아서 선물을 뜯기도 전에 슬픔이 나를 감싸안았다. 역시 아버지에게 있어 나는 선물 상자만큼 작은 존재라는 것을 아프게 곱씹으면서 눈물이 떨어질까봐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선물상자를 뜯었다. 상자가 열었을 때 일순 나의 숨은 멎을 듯 했다. 모든 시간이 멈추어 버린듯한 무중력의 세상. 순백의 눈. 아름다운 발레리나. 마음을 저릿저릿 울리는 오르골의 소리. 나는 오늘에서야 그 선물을 고르고 골랐을  젊은 아버지를 만난다. 엄마와의 이별, 타국에서의 생활. 모든 것이 낯설었을 막내 딸에게 아버지는 심혈을 기우려 그 선물을 골랐을테지.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무뚝뚝하지만 정많았던 아버지의 눈에는 한 발로 어렵게 서있는 발레리나의 모습에서 위태하게 서 있는 어린 딸의 모습이 겹쳐보였던 것은 아닐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 스노우볼 오르골은 한국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어렵게 구한 일본제품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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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기 쉬운 발레니라를 언제까지 가지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은 내가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나에게 강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성인이 되어서 외국에 나갈 때마다 그 나라의 스노우볼들을 사모으기 시작했고 오르골 장인들의 가게는 빠지지 않고 찾아가게 되었다. 작년 상아랑 오키나와에 갔을 때에도 오르골 가게에서 한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렇게 오르골의 가락과 더불어 내 혈관에 녹아있다. 아버지는 그렇게 내게 흔적되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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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부쩍 그리워지는 것을 보니 아버지를 뵐 날이 멀지 않은 듯 하다.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두지 못하는 요즘이다. 모든 것들이 부질없다. 젊어 흔적을 남기기 위해 부단히 열심을 다해 살아왔다면 남은 날들은 그 흔적들을 지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남기는 것임에도 철저히 타인에 의해 각인되는 것이기에 더더욱 그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프다. 나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처와 슬픔, 가난의 흔적만을 남기고 아버지와 같은 아름다운 추억은 남기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듯해 부쩍 두렵다. 전쟁같은 일상이 나를 지치게 하는 것 만이 아니라 남은 시간마저도 두려움에 빠뜨리고 나를 처량하게 만든다. 요즘처럼 존재가치를 잃게 하는 때가 또 있었을까?  장석주의 책을 읽다 발견한 한 문장.  "어떤 불행은 끈질기고 지독해서 죽음만이 그것을 끝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문장에 처절하게 공감하게 되는 나는 죽음으로 남기게 될 흔적조차에도 근심함으로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무엇할 수 없는 곤한 인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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