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몸의 소리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바쁘게 살아온 탓에 내 몸이지만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우려 주지 못했다. 바빳다는 것은 하나의 핑게일 뿐 몸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젊었고 절박한 내 삶에 몸은 숨죽여 소리내지 않고 참아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참는 것에는 누구에게나 어느것에나 한계가 있다. 이제는 몸이 소리를 낸다. 그것도 통증에 무감각해진 나의 모든 감각을 깨울만큼 큰 소리로 나의 귀를 잡아 당긴다. 그럼에도 나는 왜 동일하게 귀 기울이지 않는것일까? 아직도 내 삶은 내 몸을 돌아봐줄 만큼 절박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일까?
.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는 멍들이 늘어난다. 머리에도 혹이 생기고 사라진다. 가슴은 바늘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간헐적으로 느껴진다. 호르몬제를 복용한 뒤로는 더 심하다. 그렇다고 호르몬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다른 문제로 몸은 고통은 호소한다. 하지 정맥은 더 심해져 서 있기가 힘이 들고, 무릎뒤 종아리 당김이 심하다. 통풍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발의 고통을 더한다. 목에 있는 혹은 사이즈가 늘어났는지 침 넘김이 버겁고 담석역시 소화장애를 일으킨다. 지속적인 수면장애는 더위에 더 심해졌다. 짦은 수면에도 손발저림에 몸이 굳어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느낌이 든다. 앉고 일어설 때마다 현기증 빈도수가 늘었다.
.
하나둘 생겨나는 몸의 이상들과 벗하며 얼마를 살아낼 수 있을까를 가늠해본다. 아니 그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막둥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6년은 살아내야는데 그것이 참 엄청난 숙제로 느껴진다. 밤마다 들려오는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참 미안하다. 내 몸둥인데 참 낯설다. 힘들었구나.하고 보듬어 주지 못해서 측은하다. 남들보다 열심으로 살아온 삶은 내 몸둥이를 돌보지 못하는 무심을 만들었다. 버릇처럼 생긴 몸에 대한 외면은 언제까지 외롭게 할지 그것조차 알 수 없다.
.
아르바이를 시작하고 그이가 다리를 주물러준다. 따뜻한 손이 좋다. 몇 번되지 않은 그 주무름이 평생을 살아오며 내가 내 몸을 보듬고 주물러준 것보다 많다. 고맙기도 하지만 괜시리 서럽다. 뭐가 그리 바빳나? 뭐가 그리 절박했나. 억울할 것 없는 인생이지만 괜히 아랫입술을 씹어본다. 눈물이 난다. 42에 무지개 다리를 건넌 울 엄마나이를 뛰어 넘을 때 덤이라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미련이 남는것도 욕심을 부리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여기저기 멍들어 있는 주인 잘못 만난 다 타버린 나무 장작같은 내 몸둥이가 오늘은 그냥 한 없이 불쌍하고 가여울 뿐이다. 그럼에도 아껴주지 못하는 나의 빈한 마음이 메마른 손이 원망스러울 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몸에 맞지 않는 옷 (0) | 2018.12.13 |
---|---|
이 빠진 컵 이야기 (0) | 2018.11.19 |
발레니나 스노우볼 오르골 (0) | 2018.07.14 |
찬란했던 봄 (0) | 2018.07.05 |
장마. 그리고 태풍. (0) | 2018.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