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바람의 소리

huuka 2022. 4. 25. 23:16

예보가 틀리지 않았다. 비바람소리가 심상치 않다. 꾹꾹 눌러담은 속의 것이 터져나오듯 바람소리는 자제력을 잃어버렸다.그 소리에 마음이 실린다. 자제력을 잃어버린 마음은 뺨에 흐르는 눈물로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와 같다.아침해가 돋으면 언제 바람이 불었냐는듯 언제 거센 비가 내렸나는듯 그 소리는 의미를 잃고 이미 생명을 빼앗긴 여린 꽃잎만이 오늘밤의 비바람소리를 기억하게 될 것일터인데.. 잠시 불다 그칠 이 비바람소리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불어넣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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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무엇일까? 사는 것이 고해(苦海)라고 말한 것은 그저 나온 말이 아니란 걸 살면 살 수록 알게 된다. 최선의 선택은 아닐지라도 차선은 될거라 생각한 것조차 삶에는 고통이 따른다. 몸을 거칠게 다루면 정신이 흐려질 것 같아도, 날선 정신은 더 또렷해지고 슬픔은 더 크게 각인된다. 잊어야한다는 것은 누가 세운 계획인지 알지 못할 만큼 나와는 동떨어진 세상의 단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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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녀석이나 상하차로 몸이 고된 그나 왜 우리의 삶은 이렇게 조각조각 나버려야하는지 알 수 없다. 병원을 다녀오면서 더 나빠졌다는 말에 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올라 고래고래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약봉지를 받아들고 와인 2병을 샀다. 알코올에 취약한 내가 5도밖에 되지 않는 와인을 쏟아 붓고는 변기를 잡고 토했다.세상 어리석은 일은 다해보기로 작정한 사람마냥 봄이 아프게 흐른다. 이 비바람이 그쳐도 꽃자리는 그대로 남아 새잎 돋기까지 흔적은 남을 것인데 그 흔적을 지켜보는 마음은 마냥 아리고 쓰리다. 그래도 봄 지나고 여름은 올것인데 봄이 없이는 여름이 오지 않을 것이라 그 생명껏 봄을 살아야겠지.

순백은 더러워지기가 쉽다.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순백을 지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어려운 일이니 조금은 자신이 허물어져도 스스로를 용서해도 괜찮다고 자조한다. 그렇게 난 오늘을 지나고 바람소리가 조용해질 즈음 약을 먹을 것이고 어제보다는 더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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