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너무 찬란해서 슬픈.

huuka 2022. 4. 22. 19:57

몇일 흐린 뒤 나온 햇살인 까닭일까? 그 빛의 강함은 모든 잎맥들을 통과하고 꽃송이들을 벙글어지게 한다. 초록의 싱그러움과 꽃들의 찬란함이 설웁게 나가온다. 저들은 어쩌자고 이다지도 푸르고 생명력 넘친단말인가? 앙상한 배롱나무에 허리를 두르고 피어난 붉은 꽃들이 그의 빈한 몸을 가려준다. 그렇다면 나의 빈함은 무엇이 가려줄까?

유달산 조각공원을 걸어서 가보았다. 꼬박 3시간30분. 미친듯이 걸어보았네. 무슨 힘으로 그렇게 걸었는지 알 길이 없다. 한번은 이 미친듯이 아름다운 봄날에 함께 미쳐보고 싶었던 까닭이었는지도 모르지. 퉁퉁 부어버린 발을 집에와 한참을 뜨거운 물에 담궜다. 배롱나무 허리의 붉은 철쭉이 내 발에 옮겨와 꽃물을 드린 듯 붉다.
뫼비우스의 띠안의 개미처럼 경계를 넘어서지 않고 다시금 제자리에 돌아오듯 나역시 경계를 의식하지 못한 체 늘 그자리에 그 모습으로 서있다. 가는 길 등나무 꽃이 핀 것을 보는 순간 떠오른 것은 등나무가 아닌 그 시간이었다. 그때가 이맘때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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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다 내보이고도 이렇게 당당하고, 기품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꽃만이 가진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다 보여진 속, 감출수 없이 드러난 모습, 차마 고개 들 수 없었던 시간이 떠오른다.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 꽃잎이 지듯 그 시간도 지워가야만하겠지. 5시간을 자기 위해 약시간을 꼭 지키게 되었다. 잠이 주는 평안이 지금은 그무엇보다 크다. 시간은 흐르고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이 세워지고, 언젠가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질 시간이 온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니 말이지. 몇달 전에만 해도 보지 못했던 노적봉에 포토존이 세워져 있다.

내가 목포를 그리게 된다면 무슨 색깔로 그리게 될까? 아마 붉은 색은 아닐듯하다. 그렇다고 푸른 색도 아니다. 무채색. 마치 무진기행의 그 습한 안개가 자욱한 회색빛 도시로 그려지지 않을까. 찬란한 햇살보다 비라도 내려주면 좋겠다. 이 도시는 햇살보다 비가 어울린다. 적어도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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