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긍휼 - 예수님의 심장 하재성 SFC

huuka 2017. 11. 10. 17:07

독서와 영성

긍휼 - 예수님의 심장 하재성 SFC 2017.11.10


책을 읽고 받은 큰 울림으로 덜 익은 글로 제대로 표현을 못할 듯해 묵혀뒀다. 묵히면 묵힐수록 속으로 곰삭은 맛이 날 것을 기대했는데 내용마저 가물가물해지는 것이 적지않으면 기억되지 않는 나이가 된 듯하다. 다시금 책을 펼쳐 몇자 적어보려하니 그 마음이 힘겹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면 왠지 글쓴이에게 빚진 마음을 갚을 길 없을 듯해 짧게라도 적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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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 우리는 긍휼이란 단어를 언제 사용하는가를 먼저 생각해보았다. 내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누군가로부터나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형편을 살펴주십사 할 때 긍휼이라는 단어를 쓴다. 또한 내가 누군가를 안타까워하거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 때 내게는 긍휼한 마음이 있다 정도로 쓰는 듯하다. 이렇듯 긍휼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힘든 처지나 어려운 지경에 있을 때 그를 돕고자 하는 마음, 그를 헤아리는 마음이 긍휼이 아닐까 한다. 하재성목사는 "긍휼"이라는 책을 통해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이야기들을 긍휼의 돋보기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즉 이땅을 살아가신 예수님의 발걸음들. 사건들을 긍휼이라는 모티프로 엮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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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많은 기독서적, 영성서적들이 독자들에게 결국 요구하는 것은 행동의 변화와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 역시 그러하다. 예수님의 긍휼한 삶을 통해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결국 긍휼한 삶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이 책의 부제를 읽게 되면 책 읽기가 불편해진다. 그 긍휼을 예수님의 심장이라고 표현한 까닭이다.  긍휼은 하나뿐인 심장의 이야기다. 눈치로 내리게 되는 결론역시 뻔하다. 하나뿐인 심장을 주는 것 그것이 긍휼이고 하나뿐인 심장을 우리들에게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드려짐의 삶.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들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이다. 당신은 긍휼한 사람인가? 나는 긍휼한 사람인가? 이 말은 당신의 하나뿐인 심장을 다른이에게 줄 수 있는가? 나는 그 누군가에게 나의 하나밖에 없는 심장을 줄 수 있는가?의 물음이 된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긍휼을 입기 원하는 것은 그에게 단 하나뿐인 심장을 요구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무슨 자격으로 우리는 예수님께 그 심장을 요구하는가?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눠 총 14장에 걸쳐 예수님의 성품을 표현하고 있다. 각 장 말미에는 그 장의 이야기들을 갈무리해주는 정리로 글을 정리하며 이어간다.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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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긍휼을 대단한 성품, 은사로 받아야 할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긍휼이라는 단어에 사용된 휼자의 한자풀이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환기시키는 그 무엇을 경험하게 된다. 한자어 휼은 P28에 설명된 한자풀이 그대로 ()은 마음심 자에 피 혈자가 합쳐진 것으로 심장에 피가 흐른다면 남을 불쌍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고 있다. 그러다면 사람이라면 긍휼한 마음을 갖는 것인 인지상정인것이다. 은사로 노력으로 받아야 할 그 무엇인가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마음이 긍휼인것이다.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긍휼이라는 마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우리들의 무뎌진 심장은 예수님의 사역의 현장에서 절절히 나타난다. 긍휼을 읽어버린 타락한 사람들, 쉽게 단정해버리고 자신과는 무관하다며 금방 잊어버리며 피상적으로 긍휼을 드러내며 실제로는 이웃의 고통에 무감각한 인간들과 대비된 주님께서는 존재자체로 긍휼 덩어리 긍휼 공장이신 것이다.(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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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긍휼은 결코 헤매지 않는다. 눈앞에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도 예수님게서는 그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한 사람을 바라보신다. 나인성의 그 슬픈 장례식 행렬에서 주님께서는 유독 한 사라므 가장 슬픈 한 사람에게 주목하셨다. 그리고 주님의 심장 주님의 긍휼은 그 여성에게로 향했다."누가복음 7장 11-17절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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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님께 긍휼을 입기를 바라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사람. 단 한사람에게 주목하시는 그분, 많은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헤매임없이 나에게 주목해 주실 그분이 바로 주님이시기에 우리는 주님께 긍휼을 구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에 버려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나만 홀로 외떨어진 슬픔을 지닌 가슴이 될 때가 있다.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바라봐주며 주목해주기를 원한다. 많은 시선이 아니다. 단 하나의 시선만이라도 나에게 멈추어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해주길 바랄 때 헤매임없이 나를 주목해주시는 단 한 분이 계시다. 그분이 바로 긍휼의 모체이신 주님, 나의 예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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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엎드린 사람이었다. 그의 마음은 시종 엎드린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전적인 복종 전적인 신뢰 유일한 자비와 소망의 근원이신 예수님 앞에서 그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그는 주님께 엎드린 사람이었다."누가복음 8장 40-56절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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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누가 우리 주님께 긍휼을 입을 수 있는가? 그것은 엎드린 삶이다. 주님앞에 전적으로 엎드린 자만이 그분의 긍휼을 입을 수 있다. 그 엎드림은 환경을 넘어선 엎드림이며 상대의 태도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엎드림이다.우리의 엎드림에는 계산이 따른다. 내가 정한 선이 있다. 그 선을 넘어서면 우리는 엎드림을 포기하거나 엎드림의 대상을 바꾸게 된다. 하지만 환경과 상대의 태도를 넘어선 전적인 신뢰를 가진 전적인 복종은 그분의 긍휼을 입게 한다. 그 분은 한 사람. 단 한 사람에게 주목하시지만 그의 중심을 바라보시고 그의 엎드림의 태도를  보심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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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도 실로암으로 향하는 길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우회로다 치료가 더디고 시간과 삶의 에너지가 더 든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려는 특별한 길이다. 그 길은 우리가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게서 주신 것이다. 부부도 부모도 자녀도 심지어 신체적인 약점과 질병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보내주신 길이다 우리는 자신의 실로암 길을 끌어안아야 한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요한복음 9장 1-41절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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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츠교회를 위해 후원해주시는 분들의 특징은 녹녹한 살림의 분들이 아니시다. 참으로 힘든 여정을 걸어오셨고 지금도 걸어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시다. 그 분들 가운데 6살 아들이 아픈 분이 계시다. 이번 검사에서 완쾌를 기도했지만 좀더 경과를 두고보아야 하는 결과가 나왔다. 아침마다 기도로 주님의 긍휼을 구했다. 아이의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도해오셨을까? 하지만 원했던 결과가 아니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주님은 긍휼하시다. 다만 지금 우리는 우회로를 걷고 있다. 나도 그분도 그리고 우리 6살 사랑스러운 아이도 우회로를 걷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은 혼자 걷는 외로운 길이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이루기 위한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나타내기 위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아이도 엄마도 힘을 내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걷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있음또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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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뻔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분이시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관해서는 우리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더욱이 연약한 한 사람에게 우리 예수님게서 어떻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실지는 뻔히 예상이 가능한 일이다. 원수들의 예상대로 예수님께서는 정확하게 그렇게 하셨다. "마가복음 3장 1-6절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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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수님이라면 어떡하셨을까?를 곧잘 묻는다. 하지만 묻지 않고도 뻔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긍휼이 머물러야 할 이야기는 뻔하다. 연약한 한 사람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가난한 자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아픈 이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고통중에 머물러 있는 자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묻지 마라. 뻔하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들을 품어라. 왜? 예수님이라면 그렇게 하셨을 것이라는 것. 스스로가 먼저 알고 있지 않으가? 왜 우리는 곧잘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고 귀를 닫아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한 영혼의 고통 앞에서 우선 심장이 움직이는 예수님처럼 그러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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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심장을 뛰게 하기 위해 내 심장은 멈추어야 한다. 왔고 올 모든 세대의 대지를 주님의 긍휼의 피로 적시게 하기 위해 나의 탐욕의 핏줄은 경화되고 나의 심장은 막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나는 .....이다."라고 하실 때 우리의 자기 주장은 "나는 .....아닙니다."여야 한다."요한복음 1장 19-28절 .P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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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두 개인 사람은 없다.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자신의 심장을 포기함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나의 심장을 포기할 때 우리는 영원히 멎지 않는 또 하나의 심장을 소유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덧입게 될 때 우리는 영원히 멎지 않는 심장으로 그분의 긍휼을 덧입게 되고 그 긍휼함으로 또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며 긍휼히 여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분의 긍휼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오늘을 살아간다. 그래서 잡은 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덮으면서 나는 그분의 긍휼하심만 바라고 다른 이들에게 그 긍휼함을 나누지 못하는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분의 심장을 원하는 다시금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는 나를 바라보면서 지금 비록 실로 암담한 우회길을 걸어가고 있을지라도 그분의 긍휼하심을 기대하면서 나또한 긍휼함으로 나와 주의를 살필수 있는 유순한 눈매를 가지기 소망한다. 그러기에 나는 나의 심장을 더욱 강하게 하실 그분께 감사함으로 나의 심장을 내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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