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말들 / 이문영 / 후마니타스 <참 미안합니다.> 그 여자아이의 나이는 14살. 정월생이라 그런지 또래치고는 작다. 깡마른 몸, 조그만 얼굴에 커다란 사팔뜨기 눈이 도드라져 보인다. 유난히 흰 피부 때문인지 쓰러질 듯 창백하다. 난 그 여자아이의 눈을 보는 순간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것은 불안을 넘어선 공포다. 이 낯익음은 타인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앞으로 자신의 삶이 어떻게 될지, 이런 낯선 환경 속에서 자기편이 되어줄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막막함. 그 작은 몸이 뿜어내는 긴장감에 오히려 내가 숨이 막혀버릴 듯하다. 김 순분,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 여자 아이의 이름은 김 순분이다. 언니랑 같은 나이. 나와는 두 살차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우리 집 가정부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언니랑 오빠 나에게 오늘부터 집안일을 도울 사람으로 소개하고 언니, 친구 동생으로 한 가족이라며 잘 지내라고 했다.어린 나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김 순분을 가족으로 생각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 그 여자 아이는 식당 방에서 기거하면서 우리들보다 빨리 일어나 밥을 도왔고, 우리가 학교를 가면 우리들 방을 청소하고 널부러진 빨래를 했다. 우리 가족이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하면 간단한 뒷정리를 하고 식탁 한끝에서 밥을 먹고, 가족들이 식사를 마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 준비를 했다. 그렇지만 14살, 한참 놀고 싶고 어쩌면 학교를 가고 싶은 나이 아니었을까? 사춘기가 시작되고 예쁜 것을 보면 갖고 싶고, 예쁜 옷을 입고 싶은 그런 나이. 그런 까닭일까? 때때로 언니의 신경질적인 고자질과 순분이의 눈물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과 가족의 차이를 순분이를 나무라는 엄마의 말에서 나는 깨달아가게 되었다. 궁금했다. 순분이는 왜 학교를 가지 않고 우리 집에서 일을 하는지... 그녀의 아버지가 알콜중독자라서 술만 마시면 그녀를 때렸다고 했다. 엄마는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순분이를 식모로 우리 집에 보냈다. 그랬다. 그 시절에는 누구나 다 배불리 먹고 하얀 쌀밥과 고기를 먹었던 것은 아니다. 누구나 다 학교를 다녔던 것도 아니었다. 순분이 역시 우리 집이 더 좋다고 했다. 과연 그랬을까? 하지만 그때는 그 말을 여과없이 믿었다. 맞고 사는 것 보다는 편하겠지. 우리 집에서는 먹을 수 있으니까. 순분이의 눈물을 자주 보았지만 그렇게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 이문영의 <웅크린 말들>이라는 책을 아프게 읽었다. 말해지지 않는 말들의 한(限)국어 사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을 알고 읽게 된 것은 아니다. ‘잊혀 가는 우리 한국어인가?’ 하는 착각으로 선택해서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운명이고 필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해야겠다. 웅크리다는 말은 (사람이나 짐승이 몸이나 몸의 일부를)몸시 우그려 작게 하다. 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언어의 웅크림. 표현되기를 거부하는 언어. 아니 표현될 수 없어서 웅크린 그 말 대신 은어나 비유, 상징으로밖에 사용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그 단어는 단순한 소리기호가 아닌 삶이며 눈물이며 고통이며 죽음이었다. 같은 한국어(韓國語)이지만 한(限)국어가 될 수밖에 없는 말들을 빼곡이 적어나간다. . 이문영은 들어가며 이렇게 적고 있다.
요즘 말로 라임이 맞아 떨어지는 언어유희다. 같은 한이라는 글자를 다른 한자 한(韓)과 한(限)을 통해 내용을 설명한다. 맞다. 같은 나라, 동일한 시대를 살아가지만 다른 세상.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던 내 형제. 내 누이. 아버지 어머니들의 삶. 하부구조가 없이 상부구조가 있을 수 없듯 하부구조속의 그들의 삶이 없이 상부구조의 삶은 존재할 수 없다. 아니 그들의 삶을 발판으로 우리들은 서 있다.
총 17가지의 이야기와 그 바탕이 된 사건이 첨부되어 있다. 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그들의 땀으로 우리는 먹었고, 그들의 눈물로 우리는 배불렀는지도 모른다. . 어느 날 집에 아버지 손님들이 오셨다. 친구 분은 “너가 누구냐” 물으셨고 오빠는 돌아가며 소개했다. 하지만 순분이가 빠졌다. 나는 그분께 “우리 언니”라고 소개했고 오빠는 “식모”라고 고쳤다. 순분이는 철저하게 구분되어지는 존재였다. 그녀의 손을 통해 밥을 먹고, 그녀의 손을 통해 우리는 깨끗한 방에서 생활했지만 그녀는 웅크린 삶, 소외된 삶을 살아야했다. 순분이는 92년 결혼을 했다. 결혼상대자는 꽤 나이가 많은 소아마비를 앓는 장애인이었지만 먹고 사는 것은 걱정 없는 좋은 자리라고 했다. 과연 그랬을까? 꽃다운 24살. 남의 집 더부살이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조금은 살아보고 싶지 않았을까? 자기보다 10살넘어 많은 남자의 아내로 또다른 삶에 묶이게 된 그녀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충분히 괜찮은 행복한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녀의 웨딩드레스의 눈부심은 그녀가 남몰래 흘린 눈물의 반짝임이었을까? 또다시 빚어갈 진주의 아픔이었을까? . 태어나면서부터 구분되어진 삶.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삶의 과정과 길이 결정되어버리는 세상. 아무리 노력해도 그 노력의 열매를 누릴 수 없는 구조적 문제들. 나에게는 심각한 것이 되지 못했다. 학원에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침을 튀기며 가르칠 때도 그들의 삶과 그들의 인생은 철저히 타자화 된 작품 속 세계였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구분된 삶을 살아가는 마른 눈이다. 인생 새옹지마라 했던가?주민센터에서 ‘차상위가정’ 적합판정을 받았다. 그 옛날의 화려함은 찾아 볼 길 없다. 밤이 오면 하루를 살아내었다는 안도감을 누리고 아침 해가 창문에 드리우면 하루를 살아내어야 하는 무게에 괴로워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삶. 밑바닥 인생. 고개를 들수 없는 잔뜩 웅크린 삶. 그럼에도 온실 속에서 자라난 내 몸은 노동의 현장에 들어서지도 못한다. 마치 일 할 수 있는 모든 근육과 골격들이 기능을 상실한 퇴화된 고깃덩어리. 그들의 땀과 눈물로 나는 먹고 마셨지만 내 땀과 눈물로 그 누구도, 아니 나 자신조차 살아가게 할 수 없다. 이런 나라서 그들의 삶을 조금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일까? 내 삶이 바닥을 치기에 이문영의 글들이 나에게 박힐 수 있었던 것일까? 오늘에서야 나는 잊고 살았던 “김 순분”의 부서지는 웃음을 기억너머에서 소환한다. 그리고 비겁하지 않은 손내밈으로 이 땅 어딘가에서 그 작은 손으로 최선의 삶을 일구어갈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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