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시인의 밥상 / 공지영 / 한겨레

huuka 2018. 3. 29. 10:54

<시인의 밥상.> / 공지영 / 한겨레


공지영작가가 벗을 위해, 벗과 더불어 적은 에세이로 읽는이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과의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가르쳐준다. 손 뻗으면 닿는 주변의 것들로 상을 차리고 함께 나누는 이들의 우정이 인공의 것이 들지않은 음식만큼 담백하다.


벗을 위한 글인 까닭인지 삶의 길을 함께 걸어온 벗에게 전하고픈 문구들이 아롱져 있다.


  "어쩌면 치미는 슬픔 같은 먼 봄날의 아지랑이 / 이렇게나마 겨우 늙었다. / 강을 건너온 시간이 그 누군가의 언덕이 되기도 한다. /두 귀가 순해질 차례다. <중독자 p104>


또한 일상에 지친 자신에게도 나직히 전하고픈 글귀도 있었다.


    "흔들리며 나아가는 것.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배는 전복되거나 떠밀린다. 떠밀림의 끝은 좌초이다.  배가 그냥 있으면 훨씬 심하게 파도를 탄다. 그러니 가야 한다. 울어도 가야한다. 바다가 늘 그러하듯이 세상이 우리를 내보낸 이유는 이렇게 흔들리라는 것이다."<내 술상의 자산어보.p260>


수영을 처음 배울 때 물살에 몸을 맡기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초보자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바람을 탄다는 말도 물길을 안다는 말도 우리들의 삶에는 지혜를 제공하는 말이다. 적절한 흔들림. 그 흔들림을 수용하는 것이 삶의 지혜요 성숙의 길이라는 것은 삶을 살아내는 자만이 깨닫는 진리인지도 모르르겠다. 흔들림 속에서 함께 웃고 울수 있는 벗이 있다면 그 어떤 흔들림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것이 된다는 것을 공지영의 에세이를 통해 배운다. 우리들에게는 그러한 벗이 있는가?


    "땅에 뿌리박은 모든 것들은 땅에서 길어 올린 것들을 도로 내놓고 땅으로 돌아간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다.p326 

그런 사람들과 함께 엮은 이 책은 수수하지만 참 아름답다.


내게도 이런 이가 있다. 이런 이가 있어 살아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없다고 느꼈던 때 나는 가장 어린 벗에게 의지해서 생명을 이었다. 그 어린 벗은 나의 부족한 부분을 흙이 빗물을 흡수하듯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고통에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런까닭에 나는 어리석게도 나의 모나고 부족한 부분을 모르고 살았다.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 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기심이 살아내게 한 것인지 모르지만 어린 벗은 상처를 입었다. 나의 어린 벗은 어느새 성장해 대학 4년생이 되었고 자신의 길위에 지지않아도 될 무서운 삶의 짐을 지고 남보다 더 많은 열심과 수고로 쉴 줄을 모른다. 물질을 쫓아가는 삶. 그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궁벽한 삶으로 가슴에 한을 남기고 자신의 수고로 엄마를 쉬게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갖게 만들었다. 누가 어린 벗의 치기를 나무랄 수 있을까? 


삶도 자식도 자꾸만 움켜지려하면 삐긋거린다. 자유롭게 드나들 틈이 필요하다. 늘 갈급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늘 일상의 치열함 속에 살았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틈은 불필요한 "사치"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에 욕심내지 않는 달관을 느지막한 인생의 끝자락에서 경험하게 된다면 이미 늦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공지영의 글은 귀하다. 우리들에게 후회하지 않을 삶. 조금은 더딘 걸음으로 관조할 수 있는 삶의 길을 소개한다. 경쟁상대가 아닌 배려함으로 쉬어갈 수 있는 벗의 귀함을 알려준다.


뜨끈한 김이 나는 갓 지은 밥과 호박나물, 다래, 방풍나물등 계절을 맛 볼 밥상을 받아본 적 이 있었나? 내 어린 삶은 부유함 속에 있었지만 계절이 묻어나는 손맛의 정이 없었다. 나는 내 소중한 이들에게 어떤 밥상을 내어 놓았던가? 삶의 팍팍함과 분주함이 밥상의 가난을 물려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내 소중한 이들에게 소박하지만 자연의 것으로 만들어진 담백한 밥상을 차려내고 싶다. 더욱이 어린 벗이 인도네시아 인턴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 열달 품은 탯줄의 영양으로, 어린 생명을 온몸으로 담아 낸 포근함으로 맞이하고 싶다. 


  나는 안다. 이곳에서 이 좋은 친구들은 내 뒷면을 안다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어여삐 여겨준다는 것을. 이것을 우정이라고 나는 그날 달을 보며 문득 생각했고, 찬 대기 속에서 그들과 소주잔을 부딪쳤다. 쉰이 넘으며 모든 것이 부질 없을 날마다 더 절감하는 나는 생각했다. 충분하다. 참으로 충분하다고 p151.


 우리들은 말 없이 막걸리를 한 잔씩 마셨다. 여름 해가 길게 지고 있었다. 늙어가는 것이 아름답다는 건 어떤 것일까? 씨앗이 바위를 뚫은 게 아니라 늙은 것이 어린 것을 위해 필사의 힘으로 생명을 키워낸 것 그것이 늙음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문암송 곁에는 바람이 차게 식었다가 불어 왔다. 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