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몇일 남지 않은 막둥이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다녀왔다. 클래식음악이라면 모를까 그림에는 관심 일도 없는 아들녀석을 다독여 미술관에 가는 일은 출발부터 순탄치않다. 마지못해 엄마 취미에 동행해주려는 마음보다 귀찮음에 선듯 내키지 않은 걸음이다. 버스에 지하철을 두번이나 환승하는 길이니 그길도 이 더위에 짜증이 날 터. 그럼에도 4시간 넘게 미술관에 머무르며 시간을 함께 해준 녀석이 그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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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서나 보았을 그림들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먼저 둘러보았다. 그림 앞에서 사진도 찍고 짧은 지식이지만 알고 있는 범위에서 그림을 설명해주고 함께 시선을 모은다. 다시 보아도 여전히 마음을 움직이는 모네의 그림과 고흐의 그림들은 볼수록 빠져드는 색감에 신비함마저 준다. 하지만 오늘의 원픽은 존 싱어 사전트( John Singer Sargent)의 "마담 x"다. 지난 번에 왔을 때 이 그림은 출장을 가서 그 자리가 비어져 있었다. 드디어 오늘 "마담x"의 얼굴을 마주한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파리의 부유한 은행가의 피에로 고트로의 아내이자, 사교계 최고의 미인인 버지니아 아비뇨다. 그녀는 전문모델이 아니였기에 화가가 요구하는 포즈가 나오지 않았다한다. 무려 2년에 걸쳐 수십여장의 스케치와 밑그림을 그리면서 호흡을 맞추게 된 그들은 이렇게 멋지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내게 된다. 완벽한 몸매에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 두기 위해 모든 색채를 다운시키고 검정 드레스를 입혔고, 지역 유명인사들에게 보여질 모습을 염두에 두고 도도하니 턱을 치켜세워 날카로운 콧대를 선명히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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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마침내 이 그림은 완성되고 사전트는 자부심을 갖고 그린 그림인 만큼 역작이라는 평가를 기대하며 공개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 그림은 커다란 스캔들과 혹평을 받게 된다. 그 이유가 뭘까? 분명한 이유는 알 길 없지만 미루어 짐작컨데 이는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와 같은(동양적 표현으로 치자면) 비현실적인 미모와 몸매, 백옥처럼 하얀 피부에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드레스, 거기에 흘러내린 어깨 끈이 관능미를 넘어 요색스럽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렇다. 지금 메트로 폴리탄에 전시되어 있는 "마담 x"의 그림은 초기의 작품 다른 부분이 있다. 그 초기의 작품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데 과연 그 차이점을 찾을 수 있을까?
아주 미미한 차이인데 어깨끈이 어깨에서 흘러내려 있던 초기의 그림과 달리 전시된 그림은 어깨끈이 단정하니 어깨에 얹혀져 있다. 단지 그것으로 인해, 조금 흘러 내린 이 어깨 끈으로 인해 결국 이 그림은 노골적인 누드화보다 더 외설적이라는 비난에 놓이게 되고 장작 30년에 걸쳐 흘러내린 어깨끈을 어깨에 올려놓게 된다.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과연 그 경계를 정하는 것은 누구란 말인가? 너무 아름다워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 신비감 까지 감도는 이 그림 어디에서 외설, 요색을 찾을 수있단 말인가. 집단의 편견과 아집은 진실과 멀어지게 하고 비난거리로 만든다. 어디 그림이나 예술의 세계에서만 그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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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히려 흘러내린 어깨 끈이 드러내는 느슨함이 날카롭게 선 콧날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도도함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고 느껴진다. 여성성이 주는 성적인 아름다움과 모체로서 가질 수 있는 풍성함이 첫 작품에는 담겨있지만 수정된 그림에서는 완벽하게 지적이고 차가운 이미지의 아름다운 여성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