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폭염에 모든 계절이 흐름이 멈춘듯했다. 이대로 계속해서 여름만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기까지 했는데 이틀간 긴팔을 찾아 입어야 할만큼 기온이 뚝 떨어졌다. 덥다덥다 하는 사이 입추를 지나 모기가 입이 돌아간다는 처서다. 어김없이 새로운 계절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사이 짧지만 대단한 위력을 나타낼 인디안 썸머가 있겠지만 아침저녁 서늘한 기운은 어김없이 찾아올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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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배롱나무가 보고싶어졌다. 허나 이곳에서 배롱나무를 찾을 길 없으니 사진첩을 뒤질수밖에. 분명 배롱나무 사진이 있을터인데 그 많던 배롱나무는 어디에 간 것일까. 단 한장의 사진도 찾을 수 없다. J와 가장 많이 보고 사진 찍은 나무가 배롱나무일터인데 왜 사진이 없는 것일까. 모든 것이 사라져간다. 시간의 흐름에 무심함보다 허망함을 느낀다. 배롱나무는 나무의 껍질이 벗겨져 허연 뼈마디가 들어나 있지만 결코 연약해보이지 않고 흐드러진 가지들조차도 무질서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매력에 이맘때면 배롱나무의 사진을 찍기 위해 전라도 곳곳을 찾았는데 말이다. 허연 등걸과는 어울리지 않게 초록무성하고 몸둥아리의 모든 피를 모아다 꽃을 피운듯 붉은 꽃을 백일동안 피운다하여 백일홍이라 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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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에튀드 op10 No 3 이별의 노래로 불리는 곡을 임윤찬의 연주로 듣다 호세카레라스의 노래로 연속재생으로 들었다. 이곡을 기억하게 된 것은 한참 일본드라마의 열풍이 불 때 백한번째 프로포즈라는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들었을 때였다. 첼로리스트였던 여주인공의 비극적인 사랑을 이 곡으로 담아 표현하고 있는데 그때 긴 머리카락을 떨어뜨리고 몸을 가볍게 흔들며 연주하던 여주인공의 모습과, 죽어버린 남자가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 할때의 행복했던 순간이 오버랩되던 장면은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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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아가면서 들려오는 음악이나 마주하는 장면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애써 추억하거나 기억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기억.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슬픈 것이든 상관없이 그것들은 자주 떠오르고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럼에도 다시금 걸음을 걷게 하는 것 또한 기억의 저편에서 그가 늘 했던 말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나또한 그렇게 과거일 뿐인 존재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과거의 시간을 걸어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이 기억하고 더 많이 추억하는 사람이 인생의 승자라 생각한다. 그만큼 그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이니까. 딱히 누군가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나는 그 시간의 나를 그리워하고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https://youtu.be/BnpO3wYdQ44?si=wM-IfUWvUGSHB4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