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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날

huuka 2024. 3. 13. 22:49

건물 안에 건물이 담겼다. Daylight saving time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도 따뜻한 봄볕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어제는 유난히 볕이 좋아 버스를 타는 대신 걷기를 선택하고 몇 블럭을 걸었다. 신호를 기다리며 마주본 빌딩안에 또다른 건물이 담겨 있다. 아주 오래전 드라마 제목에 "해를 품은 달"이라고 있었다. 왜, 무엇 때문에 떠올랐는지 모르나 건물속 건물을 바라보는 순간 그 제목이 떠올랐고 나는 웃는 대신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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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담는 행위, 누군가를 품는 것에는 반드시 크기의 문제가 따른다. 큰 것 안에 작은 것이 담기지 작은 것 안에 큰 것이 담길 수 없다. 작은 것 안에 억지로 큰 것을 끼워 넣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나의 능력이상의 무엇을 가지려는 것은 욕심이요,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을 행하려 하는 것이 과욕이며 품을 수 없는 사람을 품으려면 고통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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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이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를 품어주고 격려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말이다. 사실 꽤 오랜 시간 그런 사람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나의 품은 뒤틀려 있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품고 그 다음 다른 이들을 품어야 했는데 나의 품은 생계와 직결되어서 다른 이들은 품을 수 있었지만 이미 차버린 나의 품은 가장 가까운 가족을 품을 수 없었다. 좋은 선생님. 좋은 사역자는 될 수 있었지만 좋은 아내, 좋은 엄마는 되지 못했다. 누군가를 희생하고 다른 누군가를 품는것은 위선이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본능과 남보다 조금 선한 마음이 치명적인 상처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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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고 명백해 보이는 현상앞에도 무수한 점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깨닫는것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똑똑하기는 했으나 지혜롭지는 못했던 것이지....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조금은 지혜롭게 처신할 수 있을까? 몇 번을 되뇌었던 물음이지만 그 답은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게 나였는지도 모른다. 나란 사람의 가치와 나란 사람의 무용...지식보다 지혜를 간구하라는 옛사람의 말은 결코 그르지 않다. 어제만큼 볕이 좋기를 기대했지만 오늘의 하늘은 잔뜩 흐르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