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가 가져오는 수많은 감정의 결이 있지만 빛과 그림자처럼 두가지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립거나 분노하거나. 감사하거나 실망하거나. 원망하거나 자책하거나... 하지만 분명한 한가지 공통점은 여전히 아프다는 거다. 숨을 쉴 수 없는 고통. 가슴이 쥐여짜지는 통증. 그 고통의 터널을 지난다. 그럼에도 다행이지 않은가? 그 끝이 분명히 있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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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끝날 줄 모르는 가슴의 통증속에 뒤척이다 새벽기도의 자리에 앉았다. 어떤 기도를 올렸는지 알 길 없지만 그분의 십자가의 고통을, 그분의 덮어주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나의 바람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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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고, 그것을 애써 증명해보이려 애썼던 때가 있었다. 악착같이 견뎠던 시간이 있었던 만큼 바보같은 자신에게 절망했던 시간도 있다. 놓여진 결과는 다른 이들의 말이 옳았고, 상황에 떠밀린 선택이 되고 말았지만, 나에게 있어 그 시간은 소중했고, 내 인생에 있어 필요한 시간이었으며 사랑을 모르는 내가 사랑을 배워간 시간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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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나는 모든 것이 끝난 지금, 그 시간만큼은 왜곡되지않고 지키고 싶은지 모른다. 그 시간이 무너져버리면 지금의 내가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그 시간속의 내가 부정당하고 싶지 않다. 이 세상에서 과연 악연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같은 인연이라도 다른 환경 다른 조건에서 만났다면 그들의 만남은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나는 그 시간의 나로 돌아가 나와 그와 화해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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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행보가 어찌 될지 알수없지만 여전히 좋으신 하나님은 결코 나의 삶을 구덩텅이로 이끌지 않으실거라는 그분의 자비에 의지한다. 사모님의 말씀처럼 이곳에 전도사님을 부르신 그분의 뜻이 분명히 있을거라는 상투적인? 말이 진리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나의 믿음의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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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성도님들의 평균연령이 65세다. 그분들 중에는 여전히 일하시는 분이 계시고 겉으로 보기에 50대중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분들 눈에는 여전히 내가 어리고 젊지만 그분들만큼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생에 강한 애착이 없는 까닭도 있지만 여전히 자학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 원인도 있다. 하지만 남은 삶을 건강하니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분명히 나의 삶은 인생의 반환점을 지나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완주가 목적인 인생이지만 절뚝이지 않고 잘 마치고 싶은 것은 욕심인 것일까? 이번에 나가면 병원투어부터 하게 되겠지만 고쳐쓰고 다독여가며 다시금 달려가야겠지. 승부에 관계없이 주어지는 인생의 면류관이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