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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빌레

huuka 2023. 11. 11. 01:02
칸타빌레.
무대 뒤에서 연극을 끝나고 계단을 내려서는 배우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많은 스텝들이 박수를 치며 배우를 맞이하는데 아주 짧은 순간 얼굴에 어린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다. 무대를 마친 만족감과 쓸쓸함,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바라보는 것인지, 돌아가야 할 곳을 바라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빈 눈에서 느껴지는 처연함의 한기는 사람의 눈이 저렇게 복합적인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낼 수 있구나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 표정은 무대와 일상사이 그 무엇도 아닌 인간존재자체로서의 날것의 표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장 자기다운, 그 무엇으로 포장되지 않은.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낸 이의 표정. 슬픈데도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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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그 배우의 한 순간에 어린 표정을 닮았다.
화려함도 벗고, 자신의 삶을 살아낸 가장 자기다운 표정의 그 무엇. 그런까닭에 벌거벗고도 풍요로울수 있는 것이 가을인지도 모른다. 바람에 따라 몸을 뉘었다. 다시금 일어서는 억새도, 허공을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새도 오롯이 자신만의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을 비워낸 성숙은 조화를 이룬다. 가시돋힌 가지와 차가워질수록 더욱 짙어지는 남천의 붉은 열매가 억새와 더불어 조화를 이뤄낸다. 서로의 몸을 내어주고 서로가 버팀이 되어 고개를 세우고 품을 키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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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현실적인 자연앞에 선 나는 오히려 길을 잃어 다행이다. 바람소리에 실려오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칸타빌레.어느새 내 몸은 바람에 부풀고 나의 두발은 음표에 몸을 싣는다.팔이 허공을 젓는다. 어쩜 바다를 건너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을은 깊고 그날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