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비가 잦은 곳인줄 어찌 알았을까. 일주일에 2-3일은 비다. 비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처럼 마음을 잡을 수 없는 날은 하루를 견디기가 쉽지 않다. 큰아이의 코로나감염소식은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 이런 날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나에게 일이 생겨도 바로 갈 수 없다는 것. 카톡으로 낮밤의 시차없이 소식을 주고받는다고 해도 물리적거리는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 없다. 혼자서 끙끙거릴 아이를 생각하면 애간장이 녹는다. 그러나 어찌하랴 배달음식을 시켜주는 것외엔 기도의 손모으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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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길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이 길의 끝이 마치 아이에게 닿아있길 바라는 염원으로 걸었는지도 모른다. 40분가량 걸었을즈음일까. 어디선가 솔향이 짙게 난다. 그러고보니 길가에 측백나무가 심겨져 있다. 아니 어느 집에서 벽으로 둘러 측백을 심었다. 처음부터 이 키의 측백은 아니었을터인데 참 자란 측백을 보니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것이 초록이 가진 생명력인지도 모른다. 측백 잎사귀마다 빗방울이 영글어 있다. 마치 빗방울이 측백나무의 열매인듯 달린 모습이 마치 한몸인듯 자연스럽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은 후 측백잎사귀에 코를 대어본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니 빗물이 코를 타고 흐른다. 이대로 내 몸이 젖어들면 나도 측백나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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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로 살아간다는 것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인가보다. 가까이 있으나 멀리 있으나 애닯는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다. 돌아오는 길은 버스를 탓다. 집까지 세어보니 14정거장이었다.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아이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마지막만큼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정리하고 싶다. 사랑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 더 보고 싶은 욕심이겠지. 이런저런 생각하면 또 마음은 가라앉고 한없이 슬퍼진다. 내 삶이건만 참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고 이 나이 먹도록 내 삶을 내가 경영하지 못하는듯해 비참해진다. 새해이건만 희망보다 절망을 깊이 끌어안게 되는 이 상황을 나는 또 얼마나 견디며 열심으로 살아내어야할까. 열심으로 살아야하는 내 삶이 참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