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저무는 해의 눈부심

huuka 2022. 5. 5. 21:01

저녁 약을 먹으면 처음에는 깨지 않고 5시간을 잣다. 마음을 끓인 탓인지 요몇일 그 5시간조차 채우지 못하고 서너차례 깨기도 하고 한시간이 줄어 4시간밖에 저녁 잠을 자지 못했다. 반면 오전 약을 먹으면 병든 닭처럼 한두시간을 자게 된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저녁을 먹고 아파트 동산을 올랐다. 적당한 경사, 평지, 계단까지 골고루 갖춘 동산은 시간에 비해 제법 땀을 흘리게 된다. 5바퀴를 계획하고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일찍 땀이 송글송글 맺혀 걸친 점퍼를 허리에 감았다. 3바퀴를 돌고는 계획한 5바퀴를 포기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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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다. 살아가면서 힘에 부치는 일들이 많았다. 이런 작은 일에서부터 생계에 이르기까지 "아 이제는 그만하고싶다."라는 생각이 후들거리는 다리에서부터 겨드랑이의 땀까지 차오를 때. 난 단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다. 힘에 부대껴도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도 계획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을 했다. 결핍을 채우기위한 내 나름의 최소한의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보니 다 부질없다. 그렇다고 성공한 것도 그렇다고 무언가를 이룬 것도 아니다. 몸은 깨지고 삶은 무너졌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은 속담에 지나지 않는다. 공든 탑도 무너진다. 그런 세상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자기 버릇 남 못준다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지고 5바퀴를 채우고도 억척스레 반바퀴를 더 돌았다. 마치 그래야 보상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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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리한 애씀과 노력은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내 의가 되었고 나의 결핍을 보상받기 위한 보상 심리를 만들었다. 다행이지 않은가? 이제라도 알았으니 말이다. 적당한 것도 괜찮고, 도중에 포기하는 것도 어쩔수 없다. 일생 후회할 일이 아니라면 목숨건 성실따위 영광이 되지 못한다. 좀 쉬어가자. 안되는 건 안된다고 인정하고 떠나 보낼 인연에는 매이지 말자. 사람에게 당한 일 되갚을 생각도 말고 마음에 두고 나를 갉아먹는 어리석음도 이제 그만하자.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와서 모든 믿음이 무너지고 다시금 떠돌게 되었지만 창조주의 은혜는 자연속에 남겨두셨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은 이곳에서 보았다. 낯선 동네의 돌담을 돌면서 마주한 작은 풀들과 계절을 가르쳐준 나무와 꽃들. 바람. 새소리. 갯내. 명사십리, 바다와 몽돌. 모든 시간을 함께한 이가 있었다. 내 인생의 모든 것들을 응축시켜 놓은 시간이 이곳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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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꼭대기에서 저무는 해를 보았다. 저무는 해의 영광이 떠오르는 해의 영광보다 못하다는 말을 누가 감히 할 수 있을까? 하루의 수고를 마치고도 제몫 그대로 바라보는 이에게 눈부심을 안겨준다. 그 푸른 하늘과 바다를 제대로 보랏빛 그리고 붉음으로 물들여가면서 끝까지 흐트러짐이 없다. 일생을 버텨온 것이 분에 넘치는 노력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의가 되었든 보상심리가 되었든 그 성실과 노력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음을 안다. 내 의대로 살지도 못했고, 삶이 보상받지도 못했다. 마지막 사역지마저 배신감을 맛보았다. 첫주 지나 후사례라고 마지막주 사임으로 첫주 설교를 하지 않았다고 마지막 달 사례를 받지 못했다. 마지막 마음으로 성도들에게 돌린 떡이나 중고등부아이들에게 남긴 선물까지 무엇하나 보상받지 못했고 오히려 뒤통수를 맞았다. 수고가 그렇게 돌아올 수도 있다. 이제 그만하자. 다 잊자. 그리고 남은 시간만을 생각하자. 내 인생도 저물어 간다. 떠오르는 해의 영광과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져무는 해의 영광과 그 눈부심으로 내 삶을 마무리해 나가고 싶다. 그럼에도 이제는 적당히. 죽을만큼 후회할 일 아니라면 애쓰는 건 그만하자. 할 만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누가 뭐라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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